루카 가다니노의 신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막 보고 왔는데, 참 머천트-아이보리 영화더라고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러브스토리인데, 주인공들은 모두 인문학적 교양이 풍부한 사람들이고, 영문학 각색물이고, 시대배경은 적당히 옛날이고요. 물론 이스마엘 머천트와 루스 프라워 자발라는 고인이 되었고 제임스 아이보리는 연출 대신 각색을 맡았지만. 영화의 시대배경은 1983년. 그러니까 막 머천트-아이보리가 전성기를 향해 돌진하던 때였죠. 세월이 이렇게 흘러 이 때가 벌써 이런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앞에서 말했지만 첫사랑 영화입니다. 여름 방학을 이탈리아에서 보내는 엘리오라는 17살 남자아이의 이야기예요. 이 아이는 아빠가 초대한 손님인 올리버라는 학자와 어울리다가 사랑에 빠집니다. 이게 내용의 전부예요. 첫사랑 이야기라는 게 다 비슷하지 않던가요. 이 영화도 그 익숙한 길을 갑니다. 단지 17살이라는 그 아슬아슬한 나이의 흥분과 열망을 다치지 않게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죠. 물론 북부 이탈리아의 여름을 기가 막히게 로맨틱하게 그린 건 당연하고. 전 여름을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 영화의 여름은 조금 혹하더군요. 물론 직접 경험하면 거기도 엄청 덥겠죠. 우리나라처럼 후텁지근하지는 않겠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엘리오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평범한 십대 남자아이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아이라는 것 같습니다. 학자 부부 아래에서 자란 3개 국어가 유창한 코스모폴리탄이고 기타와 피아노로 바흐를 연주하는 음악가이고 교양이 풍부한 독서가죠. 머천트-아이보리의 영화에 자주 교양있는 과거에 대한 판타지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주인공이에요. 게다가 주변 환경도 정말 좋아서... 특히 엘리오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버지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다보면 아련함보다 부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정말로 좋은 성장 환경의 기록이에요. 우리 대부분은 이만큼 운이 좋지 못하죠.

단지 상대인 올리버에 대해서는 조금 신경 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17살 소년과 섹스하는 성인남자의 이야기니까요. 아이가 이를 감당할만큼 성숙해있지만, 엘리오를 연기한 티모테 샬라메의 너무나도 청소년스러운 깡마른 몸을 보면 좀 신경이 쓰였습니다. 전 여전히 초대받은 집의 17살 아들이 아무리 예뻐도 당장은 같지 자지 않는 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쩌다가 그랬다면 조금 더 죄의식을 강하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역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거고. 원작인 앙드레 애치먼의 소설은 이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소설 속 올리버는 24살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올리버 역의 아미 해머는 이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보이죠. (18/03/09)

★★★☆

기타등등
1. 당연히 게리 올드먼이 아카데미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전 개인적으로 티모테 샬라메의 연기가 더 좋았습니다. 물론 아카데미상에는 자기만의 논리가 있죠. 올해는 평생 공로상의 의미가 더 강했고.

2. 감독 루카 가다니노는 최소한 한 편의 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군요.


감독: Luca Guadagnino, 배우: Timothée Chalamet, Armie Hammer, Michael Stuhlbarg, Amira Casar, Esther Garrel, Victoire Du Bois

IMDb http://www.imdb.com/title/tt572661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8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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