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 The Post (2017)

2018.03.04 22:33

DJUNA 조회 수:7812


캐서린 그레이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대통령의 사람들]을 통해서였죠. 그 영화에서는 캐서린 그레이엄이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을 향한, 남자라면 절대로 듣지 않았을 욕이 한 번 언급되지요. 그 때 알았어요. 워터게이트 사건 때 워싱턴 포스트의 회장이 여자였구나. 그런데 당시 그런 자리에 있었던 여자가 몇 명이나 되었지? 그레이엄이 처음이었죠.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더 포스트]는 그레이엄이 워싱턴 포스트를 이끌기 시작한 초창기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신문 서사죠. 1971년에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 밴 브래들리는 베트남전에 대한 진실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합니다. 닉슨 정부에서는 먼저 이에 대해 기사를 실은 뉴욕 타임즈의 후속 보도를 금지한 적 있죠. 그렇다면 이걸 공개해야 하는 걸까요? 진실도 좋지만 회사가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굉장히 교과서적인 이야기입니다. 저 사건을 먼저 취재한 뉴욕 타임즈의 역할이 만만치 않게 크기 때문에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온전한 워싱턴 포스트의 이야기도 아니에요. 이 이야기에만 집중했다면 영화의 이야기가 조금 약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쉽게 결말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하지요.

그런데 영화는 이 익숙한 드라마에 조금 다른 이야기를 추가하고 있어요. 캐서린 그레이엄이 등장하는 거죠. 70년대 남자언론인의 영웅담처럼 흘러갔던 이야기가 중간에 무게 중심이 바뀌어요. 남성중심사회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여자 이야기와 용맹하지만 사실 잃을 게 생각만큼 많지 않은 언론인의 뒤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경영인의 이야기가 들어와요. 전통적인 신문 이야기 위에 그만큼 전통적이고 교과서적인 페미니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이야기도 사실 복잡미묘할 것은 없어요. 거의 나이브할 정도로 명쾌하고 단순하지요. 하지만 스필버그는 여기에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라는 노련하기가 구렁이 같은 두 베테랑 배우들을 가져다 놓습니다. 스필버그의 영화가 이렇게 배우에게 공간을 많이 준 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스트립과 행크스는 물 흐르는 것 같은 연기 호흡을 보여주며 이 이야기에 강한 인간적인 요소를 부여합니다.

굉장히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진 영화예요. 지금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레디 플레이어 원]을 찍고 나서 초고속으로 찍었다고. 그렇지만 이 영화엔 거친 구석이 전혀 없어요. 자기가 다루는 도구에 너무나도 편안한 베테랑 감독의 영화지요. 대단한 과시는 없지만 정말 '잘 만들었어요'. 우리나라는 과연 이런 노인네를 키울 수 있을까요. (18/03/04)

★★★☆

기타등등
노라 에프론에게 헌정되었어요. 메릴 스트립은 에프론과 칼 번스틴의 결혼생활을 다룬 [제2의 연인]에서 에프론을 모델로 한 주인공을 연기한 적 있죠.


감독: Steven Spielberg, 배우: Meryl Streep, Tom Hanks, Sarah Paulson, Bob Odenkirk, Tracy Letts, Bradley Whitford, Bruce Greenwood, Matthew Rhys, Alison Brie

IMDb http://www.imdb.com/title/tt629482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9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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