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은 '유로파 기획'이라는 극단에서 만든 SF 영화입니다. 당연히 관객들을 끌 수 있는 스타도, 넉넉한 제작비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영화는 이 두 도구를 극한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 도구들이 아주 새롭거나 그런 건 아닌데,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잠재관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처럼 보이기엔 충분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재미있어요.

영화의 무대는 1층에 카페가 있는 작은 건물입니다. 언젠가부터 2층에 있는 주인공의 텔레비전이 아래층 카페의 텔레비전과 연결됩니다. 그냥 연결된 게 아니라 카페의 2분 뒤를 먼저 보여주는 거죠. 위층의 텔레비전을 아래층으로 가져와 서로를 마주보게 하면 더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뒤로 온갖 소동이 실시간으로 일어나는데, 영화는 이것을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원컷으로 찍어냅니다. 물론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고 실제로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만.

완벽하게 이치에 맞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긴 대부분의 시간여행 이야기가 그렇지요. 일단 끝없이 이어지는 이 시간여행의 고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하지만 영화는 정교한 계산을 통해 과거와 미래가 엇갈리는 이 세계의 모험을 그럴싸하고 재미있게 그려보입니다. 교묘하게 연결된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과 같은 쾌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장치들은 사람 좋은 일본식 코미디와 로맨스 안에서 움직입니다. 중간에 무서운 아저씨들이 나오긴 하지만 폭력의 비중은 낮아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재미있게 본 관객들은 이 영화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예요.

보면서 '왜 저 사람들은 2분 뒤의 미래를 깨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저런 기계가 생겼다면 가장 먼저 인과를 끊으려 할 텐데요. 하지만 이 영화의 사람들은 얌전하게 미리 제시된 미래에 복종합니다. 2분 전에 본 자신의 대사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이것이 영화의 일본식 특성인지, 아니면 아이디어를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해 설정을 이용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둘다일 수도 있겠지요. (21/07/25)

★★★

기타등등
영화의 제목에 쓰이는 드로스테 효과는 서로 마주 보는 거울 속의 무한반복 이미지를 의미합니다.


감독: Junta Yamaguchi, 배우: Aki Asakura, Riko Fujitani, Yoshifumi Sakai, Kazunari Tosa, 다른 제목: Beyond the Infinite Two Minutes

IMDb https://www.imdb.com/title/tt1450058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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