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영화 하나를 소개할게요. 조셉 그린의 1962년작 [죽지 않는 뇌]. 제목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고전이라는 건 영화가 좋다는 뜻은 아니지요. 처음부터 야심없이 만들어진 극저예산 영화이고 (영화 대부분을 호텔 지하실에서 찍었다고요) 뒤늦게 개봉된 뒤에는 당연한 악평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못만든 영화의 어처구니 없는 여러 장면과 설정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컬트 영화가 되었어요. 이런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미스터리 사이언스 시어터 3000] 버전도 나왔고 2009년엔 뮤지컬 각색물도 나왔어요.

그렇게 독창적이라고 할 수 없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역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몸에서 떨어져 나온 뇌요. 이전에도 미국과 소련 양쪽에 이 소재를 다룬 SF 소설이 나왔고 [죽지 않는 뇌] 이전에도 이 소재의 영화들이 꽤 여러 편 만들어졌어요. 거의 서브장르화된 영역이고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9년 무렵에도 그랬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빌 코트너는 천재 외과의사입니다. 교통사고로 약혼녀인 잰 콤튼이 죽자, 빌은 잰의 잘린 목을 동료 의사 커트가 머물고 있는 별장의 지하에 있는 실험실로 가져와 살려냅니다. 빌이 머리에 붙여 줄 몸을 찾아 나서는 동안 깨어난 잰은 자신의 상태에 진저리를 치지요. 다행히도 잰은 실험실에 감금된 정체불명의 괴물과 텔레파시로 연결됩니다.

이 영화가 인기있는 이유 중 하나는 소재의 음란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빌이 잰에게 주려는 몸은 무엇일까요? 그건 1950년대 미국 남자가 아름답고 섹시하다고 느끼는 부류입니다. 빌은 섹시 댄스를 추는 댄서, 미인대회 참가자 기타등등을 거쳐서 얼굴에 상처를 입고 좌절한 사진 모델을 찾아냅니다. 이 과정 중 영화는 노출을 많이 한 여자들을 아주 선정적으로 잡아내요. 당연히 이는 영화가 의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톤과 어울리지 않고 엉뚱한 재미랄까, 그런 걸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그러면서 과학과 윤리에 대해 꽤 심각한 어조로 지껄이는데, 그 대부분은 1950년대 영화들을 지배하는 '신의 영역에 침범한 과학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 바탕을 두고 있고 별 의미는 없습니다. 단지 영화는 몸과 육체의 관계에 대해 조금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머리만 살아남은 잰은 사고 전과는 달리 차갑고 일그러진 사람인데, 영화는 그게 몸의 영향이 사라진 결과라고 우기고 있는지 모르지요. 하지만 그런 사고를 당하고 남자친구의 실험대상이 된 사람이 분노하고 짜증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대놓고 성차별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지만, 은근히 페미니스트 독법이 가능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남자들의 의도는 아니었을 거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섹시한 몸을 찾아 자기 여자에게 주려는' 빌의 의도는 당연히 여성의 몸에 대한 남자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머리만 남은 여자'가 된 잰을 혐오하고 심지어 입을 막으려는 빌과 커트의 행동은 노골적이고요. 그렇게 되니, 이들에 맞서는 잰의 투쟁은 훨씬 의미가 있는 것이 됐습니다. 심지어 빌의 희생자가 된 모델을 적극적으로 구출하는 것도 잰입니다. 영화는 잰을 부정적인 캐릭터 그러니까 남자들에게 짜증내는 여자로 그리는 것 같은데 결과물만 보면 잰은 주인공의 자격을 모두 갖추고 있거든요. 여기에 대해서는 의외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 수 있습니다.

여전히 못만든 영화입니다. 페이스는 엉망이고 각본은 뜬금없고 괴물 분장은 조소감이지요. 괴물과 관련된 후반 액션은 할리우드 영화사상 가장 바보 같은 살인장면으로 알려져 있는데, 더 바보 같은 영화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런 소리를 들을만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고전이 되면서 이 결함들은 모두 개성이 되어버렸지요. (21/11/03)

★★

기타등등
1. 2020년에 리메이크판이 나왔습니다.

2. 잰을 연기한 버지니아 리스는 이 영화를 너무 싫어해서 후반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대표작이 됐죠.


감독: Joseph Green, 배우: Jason Evers, Virginia Leith, Leslie Daniel, Adele Lamont, Bonnie Sharie, Paula Maurice, Marilyn Hanold, Bruce Brighton, 다른 제목: The Black Door, The Head That Wouldn't Die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2646/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73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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