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소 Senso (1954)

2015.06.22 01:02

DJUNA 조회 수:3673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는 비스콘티가 비스콘티가 된 첫 번째 영화입니다. 네오 리얼리즘 영화를 만들던 공산주의자 감독이 이 영화에서부터 상류사회를 다룬 호사스러운 사극 영화의 세계로 진입했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 경계선이 분명한 것도 아니고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이 이후의 영화니까요.) 갑작스러운 예술적 배반 같은 것도 아니지만 그건 굳이 제가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영화의 원작은 카밀로 보이토([메피스토펠레]의 작곡가 아리고 보이토의 형이에요)의 중편소설입니다. 이탈리아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리비아라는 귀족부인이 오스트리아군 장교와 놀다가 장교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복수한다는 이야기죠. 단순하고 거칠고 잔인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보다 훨씬 수월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독자는 두 주인공에 대해 어떤 판타지도 없으니까요. 화자인 리비아는 자신의 연인인 레미조 루츠 중위가 얼마나 저열한 인물인지 알아요. 독자들 역시 이 두 주인공이 감각만을 추구하는 얄팍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요. 기대가 없으니 서스펜스도 없죠.

하지만 영화는 그 몰락의 서스펜스가 충분합니다. 영화에서 알리다 발리가 연기한 리비아는 덜 솔직한 인물이에요. 그만큼 잃을 것도 많고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원작의 리비아와는 달리 영화의 리비아는 이탈리아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프란츠 말러 중위 (보나마나 작곡가 말러에서 이름을 따온 거죠)에 대한 리비아의 사랑은 그 때문에 강한 죄의식을 깔고 있어요. 말러의 요구가 늘어날수록 리비아는 독립자금을 훔친다든지하는 일련의 배신의 과정을 거치고 그러는 동안 어떻게든 자신을 정당화하려다가 결국 포기합니다. 말러 역시 루츠보다 복잡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건 실제로 리비아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러의 캐릭터를 미화하고 있기도 하고, 실제로 원작보다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이기도 하죠. 원작의 루츠는 그냥 비겁한 탈영범이지만 말러는 전쟁에 대해 어느 정도 허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노골적으로 자학적이죠. 마지막 결말은 거의 말러의 자살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영화만 보고 이들에 대한 비스콘티의 태도가 무엇인지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영화보다는 많이 복잡해졌다고 하지만 리비아나 프란츠 말러는 여전히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에요. 차갑고 솔직한 원작의 리비아와는 달리 영화 속 리비아의 독백은 직접 듣고 있으면 "아, 그러세요"라고 대꾸하고 싶을 정도로 장황하고 진부해요. 게다가 배우의 문제가 있어요. 알리다 발리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가슴을 열고 몰입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고, 팔리 그레인저는 그냥 연기를 못하잖아요. 그레인저의 그런 거친 연기가 말러의 캐릭터에 투박한 순수함 같은 걸 부여하긴 하지만 비스콘티는 원래는 말론 브랜도를 원했다니, 이건 비스콘티의 첫번째 의도가 아니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풀스케일 이탈리아 오페라의 장대함을 과시합니다. 실제로 오페라, 그러니까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무대에서 시작하는 영화이기도 해요. 베르디의 오페라는 1860년대의 정치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고요. 리비아 역시 자신을 일종의 오페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단지 보기만큼 진지한 오페라는 아니에요. 교양있는 귀부인이 굉장히 천박한 사건을 겪으면서 그것을 로맨틱한 무언가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 거죠. 영화는 지극히 아름답지만 그만큼 얄밉고 잔인합니다. 감독이 조금 높은 곳에서 주인공을 깔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15/06/22)

★★★☆

기타등등
나중에 틴토 브라스가 이 원작을 리메이크했지요. [센소 '45]라고. 시대배경은 제목에 나와 있어요.


감독: Luchino Visconti, 배우: Alida Valli, Farley Granger, Heinz Moog, Rina Morelli, Christian Marquand, Sergio Fantoni, 다른 제목: 여름의 폭풍

IMDb http://www.imdb.com/title/tt004746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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