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 두 편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속편이 나왔어요. 1951년작 [지킬 박사의 아들]과 1957년작 [지킬 박사의 딸]. 이 중에선 [지킬 박사의 딸]이 [지킬 박사의 아들]보다 더 유명한데, 그건 감독이 에드가 G. 울머였기 때문이죠. 두 편 모두 잭 폴렉펜이라는 작가가 각본을 쓴 비슷한 내용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킬 박사의 딸]의 내용이 더 깊이 분석되기도 합니다.

스포일러 다 노출하면서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막 21살이 된 주인공 자넷 스미스는 약혼자인 조지 헤이스팅스와 함께 후견인인 로마스 박사의 저택을 방문합니다. 자넷과 조지는 그 날 밤 저택에서 비밀 실험실을 발견하고 로마스 박사가 숨겨왔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자넷은 악명높은 늑대인간 지킬 박사의 딸이었어요. 그 뒤로 저택 주변에서는 연달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자넷은 이 모든 일들이 늑대인간이 된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믿게 됩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모든 게 지킬 박사의 재산을 노리고 있었던 로마스 박사의 음모였습니다. 로마스 박사가 자넷에게 최면을 걸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살인을 저질렀던 거죠. 게다가 로마스 박사는 늑대인간이기도 했어요. 다행히도 조지의 도움으로 자넷은 누명을 벗고 로마스 박사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최후를 맞습니다.

당연히 말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죠. 일단 폴렉펜은 지킬 박사를 늑대인간으로 만들었는데, 지킬 박사라는 이름을 제목에 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죠. 게다가 늑대인간인 악당이 너무 추리소설 악당처럼 굴고 있잖아요. 앞뒤가 아주 안 맞는 건 아니지만 전혀 다른 동기와 성격의 두 악당이 거칠게 공존하고 있어요.

그런데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러닝타임이 짧아요. 71분. 앞뒤가 안 맞긴 해도 계속 일을 만들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영화지요. 로마스 박사가 자넷에게 최면을 거는 장면이 너무 빨리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악당의 정체가 드러난 상황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가 따로 있잖아요. 게다가 울머의 기본기가 있어서 상당히 효과적인 호러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지킬 박사의 아들]와 비교해 이 영화가 더 깊이 분석되는 이유는 더 유명한 감독의 영화여서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여자여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가부장제도 시스템 속 젊은 여성의 삶이 어떻게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조종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호러 텍스트인 것이죠. 물론 폴렉센이 진지하게 페미니즘 호러를 의도하고 썼던 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전혀 다른 클라이맥스가 나왔겠지요. 하지만 텍스트와 주제는 종종 작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후대 관객들과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 태어나는 겁니다. (20/04/04)

★★☆

기타등등
[사이클롭스]와 동시 상영된 영화인데, 두 영화 모두 글로리아 탤봇 주연이었습니다.


감독: Edgar G. Ulmer, 배우: Gloria Talbott, John Agar, Arthur Shields, John Dierkes, Molly McCard, Martha Wentworth, Marjorie Stapp, Reita Green, Marel Page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0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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