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복을 입은 여자 Flickan i frack (1926)

2020.11.07 14:26

DJUNA 조회 수:1922


카린 스반스트룀의 [연미복을 입은 여자]는 얄마르 베리만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무성영화고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남장한 여자 이야기예요. 단지 이 영화에서 남장은 변장의 의미가 없습니다. 주인공 카챠는 남자로 변장한 게 아니라 그냥 남자 옷을 입고 무도회에 갈 뿐이에요.

영화의 배경은 남녀공학 기숙학교가 있는 소도시입니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카챠는 막 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어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는 루드비히는 머리가 나빠서 좀 힘들긴 했지만 카챠가 마지막 한 달 동안 열심히 가르쳐서 가까스로 졸업을 했어요. 백작이기도 한 루드비히는 신이 나서 무도회를 엽니다. 6월에 무도회를 여는 게 그 동네 상식과는 잘 안 맞았던 모양이긴 하지만요.

문제가 있습니다. 카챠에겐 옷이 없어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아마도 사별한 엄마의 빈 자리를 채우느라 바빠서 외무를 가꿀 여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동생 쿠리는 사치스럽기 짝이 없지요. 카챠는 아빠에게 옷 살 용돈을 달라고 하지만 가차없이 거절당합니다. 익숙한 억울함의 기운이 스크린을 뚫고 솟아납니다. 하지만 카챠는 곧 대안을 찾습니다. 좋은 여자 옷을 살 수 없다면 이미 집에 남동생이 사놓은 연미복을 입고 나가는 거죠. 그리고 그건 1920년대 스웨덴 작은 마을에서는 어마어마한 스캔들입니다.

주인공의 앞날이 엄청나게 걱정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카챠는 돈많고 머리나쁘고 자길 잘 따르는 백작과 결혼할 것이고, 결혼하지 않더라도 자기 앞가림을 하고 잘 살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기가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 짓긴 해야 하지요. 그리고 여기서 카야가 대표하는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이 맞서야 하는 것은 이 동네에서 여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죽은 교장의 부인인 힐테니우스 부인입니다.

여러 모로 진취적인 영화입니다. 카챠는 결국 백작과 결혼하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이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중간엔 파혼을 하고 불평등과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하기도 해요. 결혼한다고 그 선언이 취소된 것 같지도 않고요. 단지, 이들은 결혼 이후 콩고에 선교사로 갑니다. 시대의 한계지요. 백인들은 거기 안 가는 게 도와주는 건데. 무도회 소동이 끝난 뒤 마을에서 달아난 카챠를 받아 준 사람들도 재미있어요. 멋대로 백작네 저택에서 살고 있는 인텔리 여자들이지요. 이들 중 한 명은 외눈안경을 쓰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지요. 당연히 카챠의 '남장'은 이들에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 끝의 화해를 주선하는 건 이들이 아니라 보수적인 현 교장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지요. (20/11/07)

★★★

기타등등
힐테니우스 부인을 연기한 배우는 이 영화의 감독인 카린 스완스트룀입니다. 원래 배우이고 감독작이 몇 편 있는 모양이에요.


감독: Karin Swanström, 배우: Einar Axelsson, Magda Holm, Nils Aréhn, Georg Blomstedt, Karin Swanström, Kar de Mumma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16885/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9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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