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호시스 Slow Horses (2022 - ) [TV]

2022.04.30 22:55

DJUNA 조회 수:4238


애플 TV 플러스의 시리즈 [슬로 호시스]의 1시즌이 이번 주에 끝났습니다. 6회 분량이니까 비교적 짧지만 이건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 표준이지요. 이미 2시즌이 촬영 중이거나 끝난 모양으로 마지막회 에피소드 끝에 2시즌 예고편이 붙어 있습니다.

믹 헤론이 2010년부터 쓰기 시작한 동명 소설 시리즈가 원작입니다. 제목의 '슬로 호시스'는 슬라우 하우스의 별명으로 MI-5에서 문제를 일으켜 쫓겨난 요원들이 모여있는 유형지 같은 곳입니다. 단지 이 팀의 리더인 잭슨 램은 왕년에 전설적인 요원이었다는데 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죠.

시리즈는 역시 첩보계의 전설인 할아버지를 둔 리버 카트라이트가 훈련에서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슬라우 하우스로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안에서 의욕 없는 동료들과 함께 아무 의미 없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데, 사건이 터집니다. 앨비언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의 극우파 일당들이 파키스탄계 대학생을 납치해 참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어쩌다 보니 이 사건과 얽히게 된 슬로 호시스는 자칫하면 부국장 다이애나 태버너의 제물이 되어 더 바닥으로 떨어질 판입니다.

[슬로 호시스]는 설정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슬라우 하우스의 사람들은 정말로 오합지졸이에요. 누구는 알코올 의존증이 있고, 누구는 기밀 정보가 든 디스크를 열차에 두고 내렸고, 누구는 외교관 아내와 바람 피우다 걸렸고. 모두가 전적으로 무능하지는 않고 몇 명은 나름 장기가 있지만 확실히 제대로 작동하는 팀은 아닙니다. 일단 의욕이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리전트 파크의 본사 사람들은 멀쩡한가? 글쎄요. 애당초부터 일이 틀어진 것부터가 그 일급 팀의 계산 착오 때문인 걸요. 그렇다면 악당들은 멀쩡한가? 아뇨, 이 시리즈에서 가장 오합지졸은 바로 앨비언의 아들들입니다. 다들 멍청하고 무식하고 아둔한데 어쩌다 보니 말도 안 되는 믿음에 집착하며 위험한 짓을 벌이게 된 것이죠.

이 모든 건 그냥 사실적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협적인 건 천재적인 악당들이 아니라 게으르고 생각없는 오합지졸들이지요. 슈퍼히어로가 슈퍼빌런을 해치우는 서사가 점점 낡아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런데 첩보물은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장르잖아요. 일단 첩보사 자체가 온갖 뻘짓의 연속이기도 하고. [슬로 호시스]는 이런 난장판의 전통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업무 환경 속에서 일은 계속 틀어지고 이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영웅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슬로 호시스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리전트 파크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니고. 6회에서 시리즈는 이런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럴싸한 답을 내고 있습니다. 슬라우 하우스의 팀원들을 너무 치켜세우지 않으면서 주인공의 자격을 주는 것은 당연하고요.

오피스 코미디와 피가 튀는 첩보물이 난폭하게 뒤섞여 있고 그 위에 우리가 영국적이라고 생각하는 드라이한 유머가 잔뜩 뿌려져 있는 작품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번 시즌에서 소개된 캐릭터들이 발전하고 슬라우 하우스의 설정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22/04/30)

기타등등
헤론은 2시즌의 원작인 [Dead Lions]로 2013년에 골드 대거상을 받았습니다. 기대해도 될 거 같아요.


감독: James Hawes 배우: Gary Oldman, Jack Lowden, Kristin Scott Thomas, Saskia Reeves, Olivia Cooke, Dustin Demri-Burns, Rosalind Eleazar, Paul Higgins, Christopher Chung, Steven Waddington, Jonathan Pryce, Antonio Aakeel, Chris Reilly, Freddie Fox, Sophie Okonedo, Samuel West

IMDb https://www.imdb.com/title/tt587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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