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어스 웨이 The Warrior's Way (2010)

2010.11.23 09:49

DJUNA 조회 수:15983


이승무의 [워리어스 웨이]에서 장동건은 오로지 동양의 신비만이 존재하는 이름없는 나라의 무사입니다. 그곳은 상대방 무리가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칼질을 해대는 험악한 동네인데, 적 부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어린 공주를 차마 죽이지 못한 그는 공주와 함께 미국으로 달아납니다. 오리엔탈리즘을 의심하기 딱 좋은 상황이지만,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한국인이니 중간에 발목이 잡힙니다. 그래도 여전히 지적할 수는 있습니다. 귀찮아서 안 할 뿐이지.


영화는 그가 미국에 도착하면서 서부극이 됩니다. 논리에 맞는 설정입니다. 미국 서부 개척사에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참여했으니까요. 장동건은 중국인이 아니지만, 그러려니 합시다. 하여간 그가 도착한 서부마을은 짓다 만 페리스 휠을 완성하면 관광객들이 찾아올 거라는 순진무구한 믿음에 집착하는 서커스 단원들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막 마을입니다. 장동건은 여기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운명은 그를 가만 놔주지 않습니다. 마을은 대령이라는 악당이 이끄는 불한당들의 습격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고, 그의 옛 동료들이 공주와 그의 목숨을 노리고 미국으로 왔기 때문이지요. 


[워리어스 웨이]는 작정하고 가볍게 만든 B급 소품입니다. 주어진 이야기에 그렇게 진지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인물 소개 자막부터가 농담조입니다. 피가 튀고 신체가 절단되는 액션도 심각하기보다는 희극적입니다. [워리어스 웨이]는 절반 정도 심각하고 절반 정도는 그냥 농담인 영화입니다. 단지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것이 농담인지 구별이 잘 안 갑니다. 처음부터 심각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인공적입니다. 영화 대부분은 그린 스크린이나 블루 스크린이 깔린 스튜디오 안에서 찍은 모양이고, 배우와 빨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몽땅 컴퓨터 그래픽처럼 보입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판타지적인 매력을 가진 꿈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나온 많은 작품들이 그런 것처럼 신경질적인 경박함의 비중이 더 큽니다. 


영화에는 로맨스도 있습니다. 로맨스의 상대역은 어린 시절 대령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린이라는 여자입니다. 근데 이 아가씨는 서부극 무대에 살면서 복수를 칼로 하려고 합니다. 자기도 그 동네가 무협/서부극 하이브리드 세계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고 있나 봅니다. 하여간 장동건 무사는 린에게 검술을 가르쳐주고 연애도 조금 합니다. 이들은 데이트를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면서 하는 게 아니라 사막에서 서로에게 칼질을 하면서 합니다. 전 애니 오클리스러운 케이트 보스워스의 린이 귀여웠습니다. 각본이 이 인물을 덜 민폐스럽게 만들었다면 좋았을 겁니다.


한 시간 정도 끌다가 본격 액션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난장판입니다. 던지고 받아야 할 공이 너무 많지요. 린은 가족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장동건 무사(관객들은 엔드 크레딧을 읽고 나서야 그의 이름이 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는 공주님을 지켜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단합해서 악당들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방에서 다른 목적으로 적들이 날아옵니다. 


이들은 논리정연하게 관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워리어스 웨이]는 [피의 수확]이 아닙니다. 두 무리의 적들이 한꺼번에 습격한다는 상황을 계획적으로 역이용할 생각은 꿈도 못 꿉니다. 결과는 난장판입니다. 몇몇 재미있는 아이디어들과 액션 연출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무는 어떻게 해야 린의 복수가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두 악당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클라이맥스를 통제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이런 부류의 영화에 나오는 온갖 클리셰들을 던집니다. 그 중 억지로 끼워넣은 소년과 개 이야기는 지겨워 죽을 지경입니다. 물론 이 역시 농담일 수 있습니다. 저라면 농담이 아니었어도 농담이라고 우길 겁니다.


배우들은 괜찮습니다. 케이트 보스워스 이야기는 앞에서 했습니다. 제프리 러시와 대니 휴스턴은 그들이 이미 가진 이미지와 매너리즘을 성실하게 재활용합니다. 장동건은 영화 내내 포커 페이스로 일관하며 최소한의 영어 대사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그렇게 닭살 돋지는 않으며 액션 신에서는 그럴싸해 보입니다. 교통정리의 능력이 있는 감독의 영화에서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10/11/23)



기타등등

첫 번째 페리스 휠이 만들어진 건 1893년이니,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아마 19세기 끝자락이나 20세기 초반이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이 사막 마을도 장동건이 온 동양의 신비스러운 나라처럼 판타지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감독: 이승무, 출연: 장동건, Kate Bosworth, Geoffrey Rush, Danny Huston, Tony Cox, David Austin, Matt Gillanders, Ashley Jones, Analin Rudd, Chontelle Melgren


IMDb http://www.imdb.com/title/tt103275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6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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