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상회 (2015)

2015.04.09 22:40

DJUNA 조회 수:9595


강제규가 [러블리, 스틸]을 리메이크한 영화 [장수상회]를 보고 왔습니다. 원작이 두 주인공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조촐하게 전개된다면 이 영화는 주인공인 성칠이 일하는 장수 마트를 중심으로 한 시장 커뮤니티 전체를 커버합니다. 나오는 사람들도 많고 캐스팅도 빵빵해요. 한마디로 더 커다란 영화가 되었습니다.

기본 이야기는 여전히 마트에서 일하는 노인 성칠이 앞집 노인 금님에게 반해 연애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마을 재개발이라는 소재가 더해졌죠. 성칠이 재개발에 반대하는 유일한 마을 주민이라 갈등이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면 한국적 주제가 들어갈 법도 한데, 끝나고 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화에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넣는다는 이유를 제외하면 시장 사람들이 등장할 이유도 별로 없어요. 쓸데없는 이야기와 쓸데없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장면에서 나와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칠의 이야기도 그리 잘 풀리지 않습니다. 원래 원작도 그렇게 이치에 맞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크리스마스 스페셜 분위기 속에서 대충 동화처럼 넘어갔던 거죠. 하지만 [장수상회]에서는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풀면서 설명을 계속 더해요. 그러니 처음 한 거짓말을 살리기 위해 끝도 없이 새 거짓말을 더하는 서툰 사기꾼처럼 되어 버렸죠. 마지막엔 작가들도 "어쩌다가 여기에 빠진 거지?"하면서 난감해했을 거 같습니다.

영화의 한국적 터치 역시 문제가 됩니다. 재개발 이야기가 얼마나 허무하게 끝나는지는 앞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칠의 캐릭터에 있습니다. 마틴 랜도가 연기하는 로버트는 솔직하고 아름다웠죠. 하지만 성칠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 남자 노인' 스테레오타이프의 묶음입니다.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성칠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한 명의 독립된 인물로 존재하지 않아요. 성격 고약하지만 그래도 '우리를 위해 평생을 고생하며 나라를 일군' 아버지죠. 이런 변명은 스토리나 주제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 말입니다.

강제규가 감독한 노인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전 [장수사회]보다 [민우씨 오는 날]을 추천합니다. 역시 신파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는 더 깊이 몰두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고 더 창의적이며 무엇보다 짧습니다. [장수상회]는 재미없이 그냥 밋밋하고 장황하기만 해요. (15/04/09)

★★

기타등등
엑소의 찬열이라는 멤버가 단역으로 나오는데, 홍보에 이 배우를 지나치게 활용하는 거 같아서 전 좀 불편합니다. [카트]의 도경수는 앙상블 캐스팅의 평등한 한 명의 배우였지만 이 멤버의 캐릭터는 그냥 없어도 되는 잉여예요. 그런데도 이런 비중으로 나온다면 팬들을 속이고 있다고 할 수밖에.


감독: 강제규, 배우: 박근형, 윤여정, 조진웅, 한지민, 황우슬혜, 문가영, 다른 제목: Salut D'Amour

IMDb http://www.imdb.com/title/tt115094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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