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룰렛 Russian Roulette (2014)

2014.12.26 01:33

DJUNA 조회 수:5429


[그래비티]는 왜 SF가 아닌가. 그거야 우주는 더 이상 SF만의 공간이 아니니까요. 적어도 지구 궤도는요. 지구 궤도를 무대로 한 SF는 여전히 만들어질 수 있지만 지구 궤도가 무대라고 무작정 SF라고 우길 수는 없단 말입니다. [그래비티]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 있지만 SF가 아닌 현실 세계의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큰 문제는 없죠.

그런 예를 하나 더 소개할게요. [러시안 룰렛]이라는 영국 단편입니다. 여기서 룰렛은 챗룰렛 서비스를 말해요. 영화 속에서는 이름이 조금 다르게 나오지만. 하여간 룰렛처럼 무작위로 걸린 사람들과 비디오 채팅을 하는 서비스입니다.

주인공 루시는 이 서비스를 통해 채팅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지루하고, 어떤 사람은 끔찍하고 그렇습니다. 딱 일반 인터넷 채팅룸 수준이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걸린 사람이 궤도에 떠 있는 러시아 우주 망원경에서 일하는 예르게이라는 코스모넛, 그러니까 우주인이었단 말이죠. 루시는 그와 우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고, 예르게이는 자기에게 가슴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건 정말 가능한 일입니다. 예르게이는 지금 루시가 사는 런던 위에 있고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갖고 있으니까요.

5분 정도로 굉장히 짧은 영화입니다. 런던에 있는 루시의 아파트를 단 한발짝도 벗어나지도 않고요. 하지만 컴퓨터를 통해 오가는 대화는 이전까지만 해도 SF의 영역이었던 광활한 우주를 가로지르고 있죠. 이 영화 역시 우주를 일상의 영역으로 가져온 'SF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인 겁니다. 우리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고 SF의 영역은 점점 잠식되어가겠죠. 걱정은 안 돼요. 우리가 우주로 진출하고 우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SF의 무대가 될 미지의 영역 또한 넓어질 테니까요.

아, 영화는 어떠냐고요. 별 이야기는 없지만 짧은 러닝타임을 야무지게 활용하는 귀여운 영화입니다. 캐스팅도 좋고 코미디의 타이밍도 괜찮습니다. 한 번 보세요. 링크는 여기. vimeo.com/90733535 (14/12/26)

★★★

기타등등
본편에 달린 메이킹 영화를 보니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이 영화의 예르게이는 진짜 우주인이 아니라 우주인인 척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기꾼일 수도 있다는. 거의 껌값으로 만든 영화의 특수효과가 관객들을 속일 수 있다면 채팅룸 저편에 있는 사람을 속이는 건 더 쉽지 않겠어요? 이 이론으로는 망원경으로 잡은 루시의 집이 설명이 안 되긴 하지만.


감독: Ben Aston, 배우: Bec Hill, Stewart Lockwood, Oli Fenton, Darren Joe

IMDb http://www.imdb.com/title/tt364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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