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벨 Annabelle (2014)

2014.10.20 13:27

DJUNA 조회 수:6709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애나벨]은 잘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전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단점들보다 감독과 작가가 맞서야 했을 핸디캡을 먼저 생각하게 되더군요. 우선 기획부터 졸속입니다. [컨저링]이 예상 외로 히트를 치자 [컨저링 2]를 만들기 전에 푼돈을 챙길 생각으로 만든 영화죠. 심지어 감독 고르는 것도 귀찮아서 [컨저링]의 촬영감독을 그 자리에 앉혔고요. 시간도 빠듯, 제작비도 쥐꼬리. 이 영화 제작비가 얼마나 인색하냐고요? [컨저링]의 인용으로 시작하면서 베라 파미가와 패트릭 윌슨의 코빼기도 안 보여준답니다. 그럭저럭 스타라고 부를 수 있는 배우는 알프레 우다드 정도. 이런 걸 들고 "[컨저링]에 나오는 무서운 인형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 와!"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을 상상해보세요. 암담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암담합니다. 애나벨 인형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이미 [컨저링]에서 이야기를 다 들었잖아요. 그래서 인형의 기원담을 들려주겠다고 허풍을 쳤지만 이 역시 할 말이 많지 않죠. 애나벨이 처키처럼 사람을 죽이고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각본은 어떻게든 애나벨로 이야기를 만들려 하지만 잘 안 됩니다. 실제로 만들어진 영화에서도 애나벨의 비중은 그리 큰 편이 아니에요.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포기한 티가 나요.

하여간 이 영화에 따르면 인형 속에 영혼이 들어간 애나벨은 컬트 집단에 들어갔다가 미치광이 살인마가 된 꽤 나이가 든 여자입니다. 주인공 커플은 우연히 애나벨의 옆집에 살다가 살인현장을 목격해요. 애나벨과 남자친구는 커플의 집으로 들어가 임신한 아내를 인질로 잡고 소동을 벌이는데, 남자친구는 경찰의 총에 맞아 죽고 애나벨은 아내의 인형을 안고 자살합니다. 그 뒤로 커플에게 온갖 기분 나쁜 일들이 벌어지죠. 다행히도 그들 주변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가톨릭 신부와 책방 주인이 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엑소시즘 이야기로 특별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많이 심심하고 평범해요.

그러나 이건 [애나벨]이 구경거리가 없는 영화라는 말은 아닙니다. 기억나는 장면들이 없진 않아요. 주인공 커플의 침실 창문으로 살인 장면을 보여주는 아이디어는 천박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먹힙니다. 어린 소녀 귀신이 여자 주인공에게 뛰어오는 장면은 특수효과의 활용이 너무나 명쾌하고 효과적이라 신기할 지경이고요. 여자 주인공이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에서 공포에 떠는 장면 역시 리듬감이 상당히 좋아요. 여전히 범작이지만 의외로 호러 감수성이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 감수성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나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14/10/20)

★★

기타등등
주연배우 이름도 애나벨이던데(애나벨 월리스), 혹시 캐스팅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감독: John R. Leonetti, 배우: Annabelle Wallis, Ward Horton, Tony Amendola, Alfre Woodard, Kerry O'Malley, Brian Howe, Eric Ladin

IMDb http://www.imdb.com/title/tt332294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7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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