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타 Autómata (2014)

2014.10.23 23:16

DJUNA 조회 수:6055


[오토마타]는 2044년의 미래가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는 장황한 자막으로 시작되는 영화입니다. 전 SF영화가 이렇게 시작할 때는 늘 불안해요. 그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내용보다 설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심지어 그 중요한 설정도 영화 속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하여간 '설정'에 따르면, 인류의 대부분은 태양폭풍 때문에 망했고 지구는 사막으로 변했으며 몇천만명의 소수가 대도시에 모여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인류를 돕기 위해 인간형 로봇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두 개의 원칙에 따라 움직여요. 하나, 로봇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해칠 수 없다. 둘, 로봇은 스스로를 수리하거나 개조할 수 없다.

머리를 빡빡 민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잭은 보험부서에서 일하는 조사관입니다. 그는 딸을 임신한 아내와 함께 어느 대륙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막연한 '도시'에 살고 있어요. 영화가 시작되면 그는 이상한 사건들을 맡게 되는데, 로봇들이 두 번째 원칙을 어기고 스스로를 수리하고 개조하기 시작한 겁니다. 누군가가 이들을 개조하고 있다고 확신한 잭은 그가 '수리공'이라고 이름을 붙인 정체불명의 엔지니어를 찾아나섭니다.

[오토마타]는 친숙하기 그지 없는 영화입니다. 리들리 스코트의 [블레이드 런너]와 알렉스 프로야스의 [아이, 로봇]에서 설정과 비주얼을 반반씩 가져왔죠. 여기서 전 일부러 아시모프의 이름을 뺐습니다. 아시모프의 로봇3원칙을 개조해 써먹는 영화지만 영화를 보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원작을 직접 읽는 대신 프로야스의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듭니다. 물론 아니겠지만.

그 결과 만들어진 결과물의 인상은 물론 두 영화에 못 미칩니다. [체리 2000]과 같은 디스토피아 배경의 80년대 저예산 SF 영화들 기억하세요? 딱 그 정도입니다. 특수효과 같은 건 많이 나아졌죠. 하지만 진부하고 생기 없는 스토리는 당시 비디오로 돌았던 이런 영화들에 더 가까워요.

[오토마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그들이 다루는 이야기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자리를 물려받을 진화한 기계에 대해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당연히 해야 할 공부도 안 하고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러니 악당들이 "넌 기껏해야 기계에 불과해!"같은 진부한 대사를 치는 각본이 나오는 거죠. 추리물 공식도 뻔하고 주인공 잭도 참 매력없는 캐릭터라 도저히 진지하게 봐줄 수가 없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심각, 심각, 심각. 당연히 지루하죠. 캐릭터 동기 같은 것도 종종 구멍이 뻥뻥 나 있고.

스페인 감독이 만든 다국적 영어영화입니다. 요새 이런 영화들 중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죠. 하지만 [오토마타]는 그 중 하나가 아닙니다. 저야 장르와 소재 때문에 챙겨봤지만 여러분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요. (14/10/23)

★★

기타등등
멜라니 그리피스가 나왔는데 못 알아 봤습니다. 그리피스는 섹스 로봇 클리오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했죠. 이 배우가 위에서 언급한 [체리 2000]의 주연배우였다는 걸 잊고 있었군요.


감독: Gabe Ibáñez, 배우: Antonio Banderas, Birgitte Hjort Sørensen, Melanie Griffith, Dylan McDermott, Robert Forster, Tim McInnerny, Andy Nyman, 다른 제목: Automata

IMDb http://www.imdb.com/title/tt197132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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