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번째 마가리타]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쇼날리 보세에겐 뇌성마비 환자인 사촌이 있대요. 그 사촌의 40번째 생일날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섹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더군요. 뇌성마비 환자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게 그 때부터라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도 성입니다. 뇌성마비 환자의 성이죠. 영화가 시작될 무렵 주인공 라일라는 비교적 씩씩하게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가족의 지원으로 대학에도 들어갔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으며 심지어 취미로 학교 밴드 노래의 가사도 쓰고 있죠. 하지만 로맨스와 섹스의 영역에서 라일라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장애인 친구와 연애를 시도해보지만 잘 풀리지 않고, 밴드 멤버인 니마에 대한 관심은 짝사랑으로 끝날 뿐입니다. 뉴욕으로 유학간 뒤로는 같은 클래스를 듣는 영국 학생 재러드의 관심을 끌려고 하지만 역시 흐지무지. 그러던 어느 날 라일라에게 단 한 번도 예상한 적 없었던 기회가 찾아오는데, 인종차별 반대시위 때 만난 시각장애가 있는 카눔이라는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 것이죠. 그리고 이번엔 그 사랑이 일방적이 아닙니다. 드디어 진짜 연애와 섹스를 하게 된 것이죠.

장애와 양성애 같은 굵직한 주제와 연결되어 있는 캐릭터지만, 라일라는 의외로 이들에 구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이들을 제외해도 할 말이 많은 캐릭터라는 거죠. 핸디캡을 짊어진 천사 같은 캐릭터는 더더욱 아니고요. 충분히 영리하고 매력적이지만 종종 얄밉기도 하고 심술궂기도 한 사람이에요. 이 영화의 드라마 상당 부분은 장애와 맞서는 일대일의 도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특히 카눔과의 연애에서 라일라가 보여주는 태도는 아무리 라일라가 그럴싸한 논리를 들이댄다고 해도 장애나 양성애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이 정도면 재미있는 캐릭터 영화입니다. 익숙한 상황의 변주지만 영화 후반까지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단지 마무리는 아쉬워요. 물론 라일라는 계속 성장 중이니까 이야기가 맺어질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라일라의 커밍아웃 이후로는 이야기를 정리하는 대신 계속 다른 이야기를 위에 얹으면서 상황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목을 따온 결말은 큰 의미가 없는 거 같고요. 솔직히 영화를 보면 라일라의 자존감과 자기애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거든요. 오히려 자기가 엄청 자랑스러울 거란 생각을 했어요. (14/10/12)

★★★

기타등등
엔드 크레디트엔 감독으로 쇼날리 보세의 이름만 올라와 있지만 IMDb엔 닐레시 마니야르가 공동 감독으로 올라와 있죠. 제가 부산에서 봤을 때 무대인사를 했던 사람은 닐레시 마니야르였고요. 쇼날리 보세는 바쁜 싱글 맘이라 일찍 집으로 갔다더군요.


감독: Shonali Bose, Nilesh Maniyar, 배우: Kalki Koechlin, Revathy, Hussain Dalal, Sayani Gupta, William Moseley, Doug Plaut, Marco Torriani, Blair Wing, Tenzing Dalha

IMDb http://www.imdb.com/title/tt292969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9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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