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인의 진주만 Operation Pacific (1951)

2015.01.02 23:36

DJUNA 조회 수:3169


[존 웨인의 진주만]은 [Operation Pacific]의 DVD 번역제입니다. 좋은 제목은 아니죠. 일단 영화는 진주만 공습과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제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미군 잠수함 이야기이니 진주만이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잠수함 영화가 육지 지명을 제목으로 삼으면 자존심이 상하죠.

존 웨인이 듀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영화입니다(하하하아...). 그의 캐릭터 듀크 E. 기포드는 선더피시라는 잠수함의 부함장입니다. 당연히 여러분은 함장인 페리가 등장하기도 전에 그의 죽음을 미리 애도하겠죠. 영화가 시작되면 그는 고아원의 아이들과 수녀들을 구출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태운 선더피시는 중간에 일본군 전함을 만납니다. 여기서 고아원 아이들이 부글거리는 잠수함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광경을 구경하는 희귀한 기회가 주어집니다. 정말 이 상황으로 영화가 끝까지 가는 건가, 하고 걱정했던 건 잠시. 아이들과 수녀들은 곧 진주만에 내립니다.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는 비교적 잡다합니다. [유보트]처럼 잠수함이라는 공간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니에요. 잠수함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만 절반 정도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가 본 잠수함 영화 중 지상 장면이 가장 많은 작품이에요. 그 다른 이야기 중 가장 큰 부분은 삼각관계입니다. 듀크에겐 언제나 메리 스튜어트라는 풀네임으로 불리는 전처가 있고 그 사람은 지금 페리 함장의 동생인 파일럿과 데이트 중이죠. 메리 스튜어트는 영화 내내 갈등하지만 듀크는 '어떤 여자도 거부할 수 없는 존 웨인 캐릭터'이고 메리를 아직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니 갈등이 발전할 여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전쟁 장면 중 영화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전투 자체가 아니라 어뢰 문제입니다. 선더피시는 계속 고장난 어뢰 때문에 애를 먹어요. 목표에 도착하기도 전에 터지기도 하고 분명히 제대로 된 각도로 명중했는데도 터지지 않기도 하고. 당시 미군이 실제로 겪었던 문제이고 당시 사람들의 짜증이 묻어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중이 지나치게 커요. 이 문제의 해결과정이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은데요.

나머지 전투 장면은 [유보트]가 세워놓은 리얼리즘의 기준을 따르기엔 많이 모자랍니다. 무엇보다 조각조각 액션이 쪼개지고 조명이 너무 밝으며 세트가 너무 깨끗해서 이 장르에 필수인 폐소공포증을 느낄 수가 없어요. 저에겐 잠수함 영화란 일단 호러이고 그 다음에 전쟁영화인데 말이죠. 하긴 존 웨인이 나오는 [배달의 기수] 영화에서 이런 걸 기대할 수는 없겠죠. 그가 느낄 수 있는 두려움엔 한계가 있으니까.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닙니다. 당시 전쟁영화의 스타일을 고려하고 보면 괜찮아요. 하지만 시대의 유물 이상의 무언가로 보기엔 너무 무난합니다. 영화 중간에 잠수함 승무원들이 캐리 그랜트 나오는 [데스티네이션 도쿄]를 보면서 '할리우드 잠수함 영화'에 대해 투덜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 영화가 그 '할리우드 잠수함 영화'와 다를 게 뭘까요. (15/01/02)

★★☆

기타등등
당시 기준으로 보면 특수효과는 무난한 편입니다. 기록영화 클립도 적절하게 잘 사용되었고. 하지만 모형 어뢰를 끄는 실이 너무 잘 보여서 신경 쓰이더군요.


감독: George Waggner, 배우: John Wayne, Patricia Neal, Ward Bond, Scott Forbes, Philip Carey, Paul Picerni, William Campbell, Kathryn Givney, 다른 제목: 태평양 기동작전

IMDb http://www.imdb.com/title/tt004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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