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Little Indians]는 아일랜드의 동요입니다. 열 명의 인디언 소년들이 한 명씩 줄어들고 마지막에 아무도 남지 않는다는 동요의 내용은 거꾸로 세는 숫자에 라임의 맞추기 위한 무의미한 말장난이죠. 원래 이 노래는 [Ten little Injuns]이라는 제목으로 불렸다가 나중에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이 노래를 부르는 민스트렐 쇼에서 [Ten Little Niggers]라는 노래로 변형되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노래를 바탕으로 [Ten Little Niggers]라는 소설을 썼는데, 제목에서도 보이는 인종차별 문제 때문에 Niggers를 Indians로 바꾸었고 나중엔 제목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로 고쳐졌습니다.

제목이 어떻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크리스티의 대표작 중 하나이고 이 작가가 쓴 작품들 중 가장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삼중당에서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이 번역본만큼 저에게 압도적인 독서 경험을 제공한 책은 얼마 없죠. 물론 지금 읽으면 이전 같지 않을 거고, 다른 책들로 면역이 된 최근 독자들에겐 그만한 힘은 없겠지만.

이야기는 여덟 명의 손님들이 인디언 섬에 있는 파티에 초대되면서 시작됩니다. 도착해보니 집에는 집사와 그의 아내밖에 없어요. 주인 없이 진행된 만찬에서 집사가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튼 레코드에서는 열 명 모두가 법망을 빠져나간 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담겨져 있었고 얼마 안 되어 [Ten Little Indians] 동요에 맞추어 손님들이 한 명씩 죽어나갑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엄청나게 많은 후손들을 남긴 작품입니다. 일단 고립된 곳에서 갇힌 사람들이 한 명씩 살해당한다는 이야기는 이후에 나온 수많은 호러/SF 작품들의 모델이 되었어요. 이 작품을 언급하지 않고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나 존 카펜터의 [괴물]과 같은 작품들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소설이나 만화들을 다 떨어낸다면 일본 추리소설 장르가 얼마나 허해보이겠습니까.

이 작품은 여러 번 영화화되었고, 이들은 크리스티 장편 각색물들 중 성과가 좋은 부류에 속합니다. 일반적인 크리스티 장편들은 질문과 응답으로 구성된 끊임없는 심문 장면들의 연속이라 영화화가 쉽지 않은데, 이 영화는 일반적인 추리소설 플롯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서 각색이 수월하거든요. 그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르네 클레르가 할리우드 시절에 만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이고 평도 가장 좋습니다.

클레르의 영화와 원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분위기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원작을 비교적 충실하게 옮겼어요. 보다 정확히 말하면 크리스티가 직접 결말을 살짝 밝게 고쳐 각색한 연극을 나름 충실하게 옮긴 거죠. 하지만 클레르는 이 영화를 작정하고 코미디로 만들었습니다.

예상 외로 슬랩스틱이 많은 영화입니다. 보트에 탄 손님들이 서로에게 의도하지 않은 민폐를 끼치면서 난처해하는 도입부부터 그래요. 크리스티 소설의 컴컴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섬의 손님들이 서로를 엿보다가 결국 원을 그리게 되는 농담에 기가 찼을지도 모르겠군요. 심지어 클레르는 이 영화가 농담이라는 걸 확실하게 하기 위해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섬으로 데려와 장면 사이에다 끼워넣습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살인의 묘사가 거의 없어서 영화의 발랄한 코미디는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이 영화가 가진 미묘한 뉘앙스는 이 영화의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영국식 코미디를 만들려고 하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영국식이라고 생각하는 건조한 블랙 유머가 삽입되긴 하는데, 그것이 프랑스인의 관점을 통과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하인 계급인 로저스 부부와 손님들의 갈등 묘사는 프랑스인의 관점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게 미국인 각색가인 더들리 니콜스의 관점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크리스티 영화들이 그렇듯, 쟁쟁한 성격파 배우들이 진을 치고 있는 영화입니다. 단지 주디스 앤더슨, 월터 휴스턴과 같은 운좋은 소수들을 제외하면 이들의 명성이 이전만 못하기 때문에, 현대 관객들은 당시의 재미를 조금 놓칠 겁니다. 하지만 다들 연기가 좋고 캐스팅도 적절해서 큰 단점은 되지 못해요. 원작을 보고 기대할 영화는 아니지만 놓치기 아까운 르네 클레르 코미디 영화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후에도 이 원작을 각색한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판들의 특이한 점은 리메이크할 때마다 주인공들이 갇히는 무대가 바뀐다는 것이죠. 분위기는 다 다르다는데, 대부분 연극의 결말을 따른다고 합니다. 단지 87년에 나온 소련 버전이 원작의 결말을 따른다고 하더군요. 전 이 원작을 작정하고 슬래셔로 각색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영향을 받은 영화들이 워낙 많아서 별 차별점은 없을 겁니다. (13/12/26)

★★★☆

기타등등
퍼블릭 도메인인 영화입니다. 좋은 점은 이 영화를 누구나 복사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그 결과 구할 수 있는 파일이나 DVD의 퀄리티가 끔찍하다는 것이죠.


감독: René Clair, 배우: Barry Fitzgerald, Walter Huston, Louis Hayward, Roland Young, June Duprez, Mischa Auer, C. Aubrey Smith, Judith Anderson, Richard Haydn, Queenie Leonard, Harry Thurst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751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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