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감정 (2013)

2014.02.23 00:57

DJUNA 조회 수:7072


어머니의 첫 기일을 맞은 헌우는 아는 형의 아파트에 머물며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인근 산에 갔다가 그 '아는 형'이 산에 놓은 노루덫에 발목이 걸린 여자를 만납니다. 여자는 형무소에서 나온 뒤 돈을 훔쳐 달아나는 중이었고, 그 여자의 뒤를 가죽옷을 입은 남자가 쫓고 있었죠.

이 정도면 모범적인 스릴러 장르 영화가 한 편 나올 수 있을 법한 상황입니다. 그렇게 가도 큰 무리는 없을 거고요. 하지만 정영헌의 [레바논 감정]은 그 방향으로 갈 생각이 없습니다. 익숙한 도입부로 시작하지만 리듬과 페이스, 구조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요.

전형적인 장르 관습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재료를 가져와 캐릭터의 명확함을 일부러 깨트리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이 영화의 전략입니다. 모양은 전혀 다르지만 전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생각나더군요. 캐릭터의 예측불가능한 반응과 엉뚱한 우연이 겹치면서 이야기의 페이스와 진행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단지 타란티노의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디지털로 찍힌 한국 독립영화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입니다.

이들의 심리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은 감독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까지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영화에서 설명은 최소한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야기를 파악할 정도의 정보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엉뚱한 일들이 엉뚱한 시간에 엉뚱한 사람들에게 벌어지긴 하지만 결말은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 보면 다들 결국 가야 할 길로 가죠. 단지 그게 그렇게 중요해보이지 않긴 합니다.

[레바논 감정]이라는 독특한 제목은 최정례의 시에서 따온 것입니다. 정연헌은 원래부터 이 시의 팬으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전에 시인에게서 제목으로 쓸 허가를 받았다고 해요. 저는 이 제목엔 보다 덜 장르적인 내용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14/02/23)

★★★

기타등등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여자는 돈을 훔쳐 산을 넘습니다. 그러다 돈을 잃어버리고 다시 거슬러가다가 덫에 걸리죠. 그런데 여자는 잃어버린 돈을 찾아 '산을 내려갑니다.' 노루덫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 길에서는 올라가야 정상인데 말이죠.


감독: 정영헌, 출연: 최성호, 김진욱, 장원영, 김재구, 조석현, 다른 제목: Lebanon Emotion

IMDb http://www.imdb.com/title/tt289441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6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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