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Noah (2014)

2014.03.20 18:51

DJUNA 조회 수:20989


노아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캐릭터로, 아브라함 종교의 신자가 아니어도 그가 대홍수 때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동물들을 대피시킨 사람이라는 건 알죠. 당연히 실존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고 메소포타미아에 실제로 일어났던 국지적 홍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이야기에 뻥을 덧붙여서 만든 캐릭터일 가능성이 큽니다. 노아 이야기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우트나피슈팀의 전설이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기록되어 있고 그보다 오래되었지만 비슷한 홍수 이야기 버전이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이 가설은 그럴싸합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와 문화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수많은 홍수 전설이 전해진다는 이유로 그보다 이전에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홍수 이야기의 기억이 전해진 것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빙하기 이후 온난화 현상 때문에 세계 곳곳에 홍수가 일어났음은 분명하니까 전 이것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럴싸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단한 의미는 없겠지만.

제가 보기에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도 홍수 시점을 빙하기로 앞당긴 것 같습니다. 영화를 아이슬란드에서 찍었고 배우들에게 겨울 옷을 입혔거든요. 척 봐도 엄청 추운 시기인 겁니다. 이걸 보고 고증에서 어긋났다고 주장하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노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아시나요? 그가 [천지창조]에 나오는 존 휴스턴처럼 생겼을 거라고 믿는다면 그거야말로 여러분이 주일학교에서 세뇌당했다는 증거겠죠. 존 휴스턴이 자신만의 주일학교 우주를 만들었다면 아로노프스키도 자기만의 SF/판타지 우주를 만든 것입니다. 토르 신도 마블 만화책의 수퍼 영웅 노릇하는 시대인데 그러지 말란 법 있나요?

아로노프스키의 우주는 성서의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일단 기본 스토리는 그대로 가져왔어요. 하지만 방주에 탄 가족의 숫자가 대폭 줄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어이없을 정도로 긴 수명도 무시했고요. 덕택에 방주를 좀 급속도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서 거대한 바위 괴물처럼 변한 타락천사들이 방주 건설을 도와주는 것으로 나옵니다. 두발가인이 근처 도시의 지배자로 나와 막판에 노아랑 한 판 붙고요. 결정적으로 노아의 캐릭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보다 더 눈에 뜨이는 것은 배경 설정입니다. 이 영화의 우주는 [천지창조] 영화와는 달리 저 위에 있는 신의 정체에 대한 확신이 없어 보입니다. 신이나 야훼 대신 '창조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존재는 절대자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고대의 외계인 아니면 완벽하지 못한 영적 존재 그것도 아니면 러브크래프트 스타일의 고대 존재에 가까워요. 심지어 아로노프스키는 중간에 천지창조 이야기를 하면서 성서의 기록을 재현하는 대신 얼마 전 [코스모스] 리메이크판 시리즈에서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축소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우주의 역사를 일주일 안에 구겨넣습니다. 현대 우주론과 진화론은 당연히 들어가고 지구에 화성 크기의 행성이 충돌해서 달이 생기는 것 같은 소소한 과학적 디테일까지도 넣었어요. 이래놓고 이 모든 일을 자기가 만든 피조물이 맘에 안 들어 홍수 일으키는 깡패가 한 일이라고 우기는 건 무리가 있죠. 한마디로 영화는 성서의 기록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이야기의 재료에 불과하고 많이 양보해도 실제로 일어났었을 수도 있는 사건의 한 없이 불완전한 버전인 것이죠.

아로노프스키가 가장 집중하는 것은 노아라는 인물의 현대적 해석입니다. 그는 노아를 신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단순한 인물로 보지 않습니다. 러셀 크로우가 그린 노아는 선량하지만 동시에 인간 혐오로 똘똘 뭉쳐있는 광신자입니다. 그의 목표는 악인들을 익사시키고 몇몇 선인들만 남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아요. 훨씬 심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의 논리가 성서보다 더 맞아요. 홍수 이후 사람들의 세상이 이전보다 전혀 나을 게 없다는 건 여러분도 인정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더 나은 인간 세계를 만들 작정이었다면 참 쓸모없는 짓입니다. 노아의 해결책이 더 이치에 맞죠. 하지만 대부분 광신도들의 생각이 그렇습니다. 자기 세계관 안에서는 완벽하게 이치가 맞지만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며 편협하죠. 이 영화의 진짜 갈등도 그런 광신에 빠진 가부장과 가족의 대립, 선량한 남자인 노아와 광신자 노아의 대립에서 발생합니다. 그 갈등은 극도로 격렬해서 그가 말년에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기대를 하며 영화관을 찾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한 성서 이야기를 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고 대홍수의 스펙터클을 아이맥스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죠. 그들은 모두 조금씩 실망할 겁니다. 성서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고 화려한 스펙터클보다 컴컴한 나무 상자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니까요. 오히려 그런 구경거리는 존 휴스턴이 구식 특수효과를 통해 더 많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강렬한 드라마를 통해 종교와 인간에 대해 다시 한 번 편견없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필요하시다면 이 영화는 좋은 선택입니다. (14/03/20)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건 보통 창문으로 번역하는 '초하르'를 충격을 주면 빛과 열을 내는 신비의 광물로 해석한 것이었죠. 선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독: Darren Aronofsky, 출연: Russell Crowe, Jennifer Connelly, Emma Watson, Logan Lerman, Douglas Booth, Anthony Hopkins, Kevin Durand, Marton Csokas, Ray Winstone, Sami Gayle, Nick Nolte

IMDb http://www.imdb.com/title/tt195949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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