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영화판은 1980년대에 디즈니의 프로젝트였죠. 당연히 애니메이션을 의도하고 있었고요. 지금도 컴퓨터 그래픽 배경에 2D 캐릭터를 합성한 당시 테스트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대로 만들어도 재미있었을 텐데 일이 잘 안 풀렸죠. 그러다가 그 프로젝트는 유니버설로 넘어갔는데 스파이크 존스가 감독이 되면서 CG 캐릭터 대신 괴물 옷을 입은 배우에게 직접 연기를 시킨다는 아이디어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의도했던 것처럼 100퍼센트 인형옷은 불가능했어요. 짐 헨슨 회사에서 만든 탈이 배우들에게 너무 무거워서 애니매트로닉스 장치를 다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배우들은 다 진짜지만 표정 연기는 나중에 CG로 덧입힌 것입니다.

원작의 스토리는 비교적 충실하게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그림책에 나온 재료들은 거의 다 쓰고 있지요. 하지만 그걸 다 합쳐도 기껏해야 한줌 정도. 영화 한 편을 채우기엔 한참 모자랍니다. 다른 무언가를 넣어야죠.

그 결과 만들어진 건 의외로 현실세계의 비중이 크고 말도 많은 영화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주인공 맥스가 엄마와 누나랑 살고 엄마는 새 남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은 산문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맥스가 괴물들의 세계로 간 뒤로도 이 현실성은 여전히 남습니다. 존스의 영화에 나오는 괴물들은 센닥의 그림책에 나오는 괴물들과 굉장히 닮았지만 이상하게 현실적인 존재들입니다. 환상 속의 괴물보다 70년대 히피들 비슷하다고 할까요. 영화는 어떻게 맥스가 괴물들의 왕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설명을 넣어주고 있고 이것은 꽤 복잡한 드라마로 연결됩니다.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에 익숙한 관객들은 영화의 분위기에 당황할 것 같습니다. 원작의 난폭한 축제 대신 존스가 선택한 건 의외로 우울하고 쓸쓸한 드라마입니다. 괴물들은 여전히 난폭하긴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고 불행해 보입니다. 중간에 삽입한 '태양의 죽음' 이야기와 저녁조의 배경 때문에 거의 멸망해가는 행성의 마지막 종족들처럼 보일 지경이죠.

영화는 살짝 오싹하기도 합니다. 맥스가 살아남기 위해 한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날 거 같고, 그렇지 않아도 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동물이 언젠가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영화를 계속 지배하고 있는 거죠. 센닥의 그림책도 오싹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건 숨어있던 야만성의 폭발과 같은 것으로 이 영화와는 종류가 많이 다르죠.

어차피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며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스파이크 존스의 선택이 100퍼센트 옳을 수는 없겠지만 존스가 센닥의 재료를 가지고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은 부인할 수 없어요. 그 각색물이 원작만큼 완벽한 자기완결성을 가질 수 없었던 것까지 트집 잡을 생각도 없고. 곧 폭발할 것처럼 불안정한 영화지만 그만큼이나 독특하게 아름다운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14/12/28)

★★★

기타등등
디즈니 테스트 동영상을 보고 싶은 분들은 여기로. http://youtu.be/LvIDRoO8KnM


감독: Spike Jonze, 배우: Max Records, Pepita Emmerichs, Catherine Keener, Mark Ruffalo, James Gandolfini, Paul Dano, Catherine O'Hara, Forest Whitaker, Michael Berry Jr., Chris Cooper, Lauren Ambrose

IMDb http://www.imdb.com/title/tt038611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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