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Everest (2015)

2015.09.15 21:25

DJUNA 조회 수:9156


등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1996년 에베레스트에서 일어난 대참사에 대해 아실 거예요. 현장에 있었던 저널리스트 존 크라카우어가 당시를 기록한 논픽션인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몇 년째 산악인들의 필독서이기 때문이죠. 크라카우어의 책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 생존자들 상당수가 이후에 각자의 관점을 담은 책들을 냈기 때문에 우린 이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라쇼몽]식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발타자르 코루마쿠르의 [에베레스트]는 이 모든 관점을 커버하는 오리지널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정말 [라쇼몽] 스타일은 아니고요. 크라카우어의 책보다는 각각의 인물들을 보다 배려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캐릭터의 실수나 선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같은 건 없죠.

당시에 일어난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드벤처 컨설턴츠'와 '마운틴 매드니스'라는 상업등반대에 속해있는 등반가들이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하산하는 동안 갑작스러운 기후 악화로 이들 중 다섯 명이 사망했죠. 같은 시기에 인도/티벳 원정대가 세 명의 사망자를 냈기 때문에 5월 10일에서 11일 사이의 사망자는 총 여덟명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생존자들의 의견도 엇갈려서 이후 굉장히 험악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죠.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가 인재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재해인지 굳이 정리하거나 분석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허약하고 작은 존재인지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액션 영웅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이미 벌어진 재난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배경이니 기초적인 스펙터클은 제공되지만 이게 재난의 묘사로 이어지지도 않아요. 이 영화의 재난은 눈에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산소부족과 추위를 특수효과로 그리기는 어렵죠. 여전히 영화보다는 책에 더 어울리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가 아무리 배우들과 배경을 생생하게 보여줘도 크라카우어의 책에 그려진 공포와 혼란을 다 따라잡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의외로 산악영화가 그렇게까지 시각적인 장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터뷰와 재현장면으로만 구성된 소박한 다큐멘터리 영화 [터칭 더 보이드]가 얼마나 성공적인 산악영화였는지 기억나세요?

70년대 재난영화 스타일로 곳곳에 굵직한 스타들을 여기저기에 배치한 영화입니다. 이들 중 등반장면을 찍은 사람들은 고생이 엄청났겠죠. 그렇게 개고생하는 동안엔 배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말 그대로 자연 속에 묻혀버려요. 네팔과 알프스에서 고생할 때보다 스튜디오에서 편안하게 촬영할 때 배우가 훨씬 이득을 보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대변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15/09/15)

★★★

기타등등
용산 CGV에서 아이맥스 3D로 봤는데, 전 이 영화가 굳이 아이맥스여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산악영화인데 레터박스가 드러나는 스코프 비율인 것도 불만족스럽고. 아무리 가까이 앉아도 레터박스는 화면을 작게 만들잖아요. 저 같으면 그냥 화면이 큰 스코프관에서 2D로 보겠습니다.


감독: Baltasar Kormákur, 배우: Jason Clarke, Emily Watson, Josh Brolin, Ingvar Eggert Sigurðsson, Robin Wright, Jake Gyllenhaal, Sam Worthington, Keira Knightley, Elizabeth Debicki, Martin Henderson, John Hawkes, Naoko Mori, Michael Kelly

IMDb http://www.imdb.com/title/tt271984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8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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