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은 [모비 딕]을 쓰기 위해 자신의 항해 경험 이외에도 여러 자료를 참고했는데, 그 중엔 모카 딕이라는 알비노 향유고래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향유고래와 충돌해 침몰당한 에섹스호라는 포경선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너새이널 필브릭의 [하트 오브 더 씨]는 후자의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으로 이 사건을 직접 겪은 두 사람인 일등항해사 오웬 체이스와 급사였던 토머스 니커슨의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론 하워드의 동명 영화는 이 책을 원작으로 삼고 있고요.

영화는 허먼 멜빌이 이미 중년을 넘긴 토머스 니커슨을 찾아가 에섹스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그렇게 믿음이 가는 설정은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에 오웬 체이스가 그에 대한 꽤 상세한 기록을 남겼고 멜빌도 그걸 읽었으니까요. 영화에서처럼 이 이야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반응할 수는 없죠. 결말을 [모비 딕]에 대한 이야기로 끝내는 것도 전 별로였습니다. 에섹스호의 이야기는 그냥 재료일 뿐이고 [모비 딕]의 위대함은 멜빌 자신에서 나왔으니까요.

하여간 영화는 오웬 체이스와 선장인 조지 폴라드의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체이스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선원이고 폴라드는 넨터킷의 명문가 출신의 경험없는 젊은이로 둘은 당연히 서로를 싫어하죠. 영화는 에섹스호의 비극이 이 두 사람을 잠시 뭉치게 한 탐욕 때문이라는 논리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배가 고래와 충돌해 침몰했다는 것이고 여기서부터 이들의 갈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대결만이 남았는데 여기서 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요. 그 얼마 안 되는 일 중엔 영화가 중반까지 비밀로 숨겨놓은 끔찍한 일도 있는데... 글쎄요. 이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서 굳이 감출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펙터클로서 영화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일단 19세기 포경산업을 이렇게 생생하게 그린 영화가 많지 않죠. 돈과 시간만 있다면 마음 먹은 건 뭐든지 보여줄 수 있는 현대 특수효과가 정착된 뒤 이 소재로 만들어진 최초의 할리우드 대작이니까요. 굳이 아이맥스로 볼 필요가 있는지 몰라도 화면비율은 최적화되어 있고요. 론 하워드의 액션 연출도 훌륭해서 볼거리는 많습니다.

[하트 오브 더 씨]는 준수하지만 좀 심심한 영화입니다. [모비 딕]과의 대조 때문에 더욱 그렇겠죠. 체이스와 폴라드는 실존인물이지만 멜빌이 신화적 무게를 담아 그린 허구의 인물들에 비하면 유령처럼 투명해보입니다. 차라리 액자를 없애고 독자적인 이야기로 그렸다면 더 몰입하며 봤을지 모르겠어요. (15/12/01)

★★★

기타등등
톰 홀랜드의 영화 역정은 어쩌자고 이리 험난한 것입니까.


감독: Ron Howard, 배우: Chris Hemsworth, Ben Whishaw, Tom Holland, Cillian Murphy, Charlotte Riley, Brendan Gleeson, Frank Dillane, Benjamin Walker, Jordi Mollà, Michelle Fairley, Donald Sumpter

IMDb http://www.imdb.com/title/tt139041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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