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 Silence (2016)

2017.03.05 00:54

DJUNA 조회 수:9489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제 가톨릭 청소년 시절 애독서 중 하나였죠.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인데, 애독자 중 마틴 스콜세지도 있었습니다. 71년에 이 소설을 각색한 일본 영화가 하나 나왔지만, 스콜세지는 그래도 자기만의 각색물을 만들고 싶어했어요. 이 양반이 자기가 앞으로 만들 [침묵] 각색물 영화 이야기를 하도 자주 해서 이미 하나 만들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죠. 앤드루 가필드 주연으로 이 영화를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어요.

수입사에서는 이 영화를 [사일런스]라고 부르고 싶어하니 저도 그렇게 부르기로 하죠. 하여간 이 영화의 주인공은 포르투갈인 예수회 신부인 세바스티안 로드리게스입니다. 실존인물인 이탈리아 예수교 신부인 주제페 치아라가 모델이죠. 로드리게스는 자신의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가는데, 거기서 일본인 가톨릭 신자들, 그러니까 가쿠레키리시탄이 어떻게 박해받고 있는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엔 그도 페레이라 신부와 마찬가지로 배교의 위기에 처합니다.

번역된 영화입니다. 하긴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죠. 엔도 슈사쿠의 소설은 유럽소설인 척하는 일본소설이잖아요. 반대로 스콜세지가 만들려고 하는 영화는 일본영화인 척하는 할리우드 영화입니다. 찍기는 또 대만에서 찍었고요. 그 결과 일본인들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수상쩍을 정도로 영어를 잘 하는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죠. 당연히 인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소설을 갖고 언어적으로 문제가 없는 영화를 찍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결과 나온 것은 무지 60년대스럽습니다. 대작 기독교 영화가 유행이던 60년대 할리우드 와이드스크린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60년대 일본영화 고전들이 떠오르기도 하죠. 비록 영어가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몇몇 장면에선 채도가 떨어지는 요새 평균적인 일본영화들보다 더 일본영화스러운 장면들이 나오기도 해요. 어느 쪽이건 마스킹 안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선 느낌이 안 살겠지만.

근데 제가 과연 [사일런스]를 가톨릭 영화로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콜세지가 얼마나 가톨릭 영화로 만들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물론 가톨릭 영화로 만든 건 맞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제가 많이 변했으니까요. [침묵]을 처음 읽었던 틴에이저와 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나이도 먹었지만 세계관도 다르고... 하여간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라가긴 하는 거 같은데, 느낌은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원작에서도 로드리게스와 이노우에 수령, 페레이라는 자기만의 굳건한 논리가 있었고 이들 모두를 존중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그 책을 도발적인 상황을 다룬 가톨릭 소설로 읽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긴 당시 제가 읽었던 가톨릭 소설들은 다 도발적인 구석이 있었죠. 하지만 [사일런스]는 그냥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문명의 충돌을 관찰하는 영화처럼 보게 되더군요. 로드리게스를 이해하고 그의 갈등과 고통에 공감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일신론과 당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죠. 이게 영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여담이지만 전 오히려 영화의 결말이 원작보다 더 좋았어요) 제가 변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17/03/05)

★★★☆

기타등등
일급 일본 스타들이 이 영화에서 스타성을 벗고 무명의 성격배우처럼 나오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외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여서 그렇겠지만.


감독: Martin Scorsese, 배우: Andrew Garfield, Adam Driver, Liam Neeson, Tadanobu Asano, Ciaran Hinds, Issei Ogata, Shin'ya Tsukamoto, Yoshi Oida, Yosuke Kubozuka, Nana Komatsu, Ryo Kase

IMDb http://www.imdb.com/title/tt049021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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