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2014)

2014.12.04 23:58

DJUNA 조회 수:6361


피부과에서 보조로 일하는 아영은 허언증 환자입니다. 여러분도 이해할 거예요. 하루 종일 여드름 짜는 게 전부인 지겹기 짝이 없는 직장에 끔찍한 가족. 경제적 문제는 당연하고요. 도피할 곳은 자신의 판타지 뿐이죠. 아영은 고급 아파트를 구경하러 다니고, 비싼 가전 제품을 샀다가 반품하고, 직장에서는 부잣집 남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전 예매하기도 전에 김동명의 [거짓말]이 저에게 97분짜리 고문이 될 거라고 예상했었습니다. 아영이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에? 아뇨, 전 거짓말쟁이 캐릭터는 좋아해요. 충분히 영리하고 능력있는 부류라면. 그러니까 톰 리플리 같은 친구들. 하지만 아영은 다른 부류입니다.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거짓말을 병적으로 늘어놓는 부류죠. 부잣집 남자친구가 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곧 결혼할 것이며 청첩장을 돌리겠다고 하는 수준이라면 이미 이성적 통제를 넘어서는 거죠. 기다리는 건 열차사고와 같은 재난입니다. 멀리서 서서히 기차가 다가오는 게 보이는데 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치를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수밖에.

'자본주의의 병폐가 낳은 정신적 질병'은 아영의 거짓말을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굳이 그 틀 안에 제한할 필요는 없겠지요. 아영의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데엔 도움이 되지만 아영은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캐릭터입니다. 어느 종류의 사회이건 아영과 같은 사람들은 있지요. 삶은 언제나 만족스럽지 않은 법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영화 역시 '자본주의의 병폐' 안에서 캐릭터를 일반화시키는 대신 이를 배경으로 삼아 아영이라는 구체적인 한 인물의 정신적 붕괴를 꼼꼼하게 그리는 쪽을 택합니다. 여기에는 김꽃비의 캐스팅이 큰 역할을 해요. 캐릭터와 배우 사이에 오묘한 이미지의 갭이 존재하는데 이게 플러스가 되는 거죠.

결과는... 생각해보시죠. 아영은 '우리 회사의 이상한 X' 같은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뒷담화 게시물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입니다. 아마 이 영화 속 사람들 상당수는 정말로 그런 글을 올리고 있을 걸요. 여러분도 익숙할 그런 인물들이 아영을 통하면서 진짜 고민이 있고 진짜 끔찍한 고통을 겪는 3차원적인 존재로 살아나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 영화를 보고 그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걸 얻을 수 있어요. (14/12/04)

★★★

기타등등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을 때 임신 8개월이었다고요. 또다른 호러.


감독: 김동명, 배우: 김꽃비, 전신환, 이선희, 다른 제목: The Liar

IMDb http://www.imdb.com/title/tt420321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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