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 Neruda (2016)

2017.05.23 18:20

DJUNA 조회 수:4834


파블로 라라인의 [네루다]는 정상적인 전기영화처럼 시작합니다. 때는 1948년. 새 정부의 탄압에 맞서 상원의원이자 공산주의자이자 시인인 네루다는 지하로 숨어들어 반정부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버티다가 그가 유럽으로 망명한다는 건 다들 아시죠.

그런데 이 유명한 이야기에 이상한 게 숨어 있습니다. 내레이션요. 이죽거리면서 네루다의 상황을 기술하는 이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암만 봐도 중립적이지 않고 파블로 라라인의 관점도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 동시대인이고 정치적으로는 극우이죠. 몇십 분 지나면 우린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네루다를 추적하는 칠레 비밀경찰인 오스카르 펠루소누예요. 생물학적 아버지가 칠레 경찰의 수장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매춘굴 출신의 청년이에요.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는 이야기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고 결국 끝에선 영화를 위해 새로 창작된 추적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비슷한 아이디어를 전에 봤죠. [일 포스티노]요. 그 영화(그리고 원작소설)에서도 주인공은 네루다가 아니라 네루다 주변의 가상인물이었죠.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만들면서 몰랐을 리는 없었겠죠.

영화는 네루다 자체에 대해서는 냉정한 편입니다. 앞에서 오스카르의 입장이 편견에 차 있다고 말했는데, 그 편견을 지우고 본다고 해도 네루다는 그렇게까지 깔끔하게 완벽한 인물은 아닙니다. 바람둥이이고 위선자이고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뚱뚱한 대머리 중년 남자죠. 물론 그런 남자라고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영화는 확실히 그를 놀리는 데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단지 라라인의 최신작 [재키]에서처럼 가혹하다는 느낌은 안 받았어요. 네루다는 영화에 맞서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는 못하는 재클린 캐네디와는 체급부터 다르니까요.

일반적인 전기 영화가 자연인의 인생을 그리면서 그 인물이 창조한 인생과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그린다면, [네루다]는 시인의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시인과 세계, 시와 독자와의 관계에 대한 더 크고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뻥이지만 사실에 발목잡혀 있는 일반적인 전기영화보다 훨씬 재미있고 더 생명력에 차 있으며 왠지 모르게 더 진짜 같은 영화예요. (17/05/23)

★★★☆

기타등등
전주에서 봤는데, 이번 주 개봉이고, 전 얼마 전에 시사용 스크리너로 다시 봤습니다.


감독: Pablo Larraín, 배우: Gael García Bernal, Luis Gnecco, Mercedes Morán 

IMDb http://www.imdb.com/title/tt469858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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