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레이드 Charade (1963)

2020.05.05 12:50

DJUNA 조회 수:2402


스탠리 도넌의 [샤레이드]에는 '히치콕이 만들지 않은 가장 훌륭한 히치콕 영화'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스토리만 보면 매우 히치콕스러운 영화이고 심지어 히치콕 단골인 캐리 그랜트가 두 주연 중 한 명인데, 사실은 히치콕이 장르화되던 1960년대에 만들어진 수많은 유사 히치콕 영화 중 하나인 거죠. 그리고 영화를 보면 아주 히치콕스럽지도 않아요. 히치콕의 재료들이 있지만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티가 납니다. 그리고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오드리 헵번은 히치콕 스타일의 배우가 아닌데, 이 영화의 매력 절반은 오드리 헵번에게서 나오잖아요.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주인공 이름은 레지나 램퍼트. 동시통역이었다가 찰리 램퍼트라는 남자와 결혼했는데, 이혼을 생각 중이에요. 하지만 남편은 파자마 차림의 시체로 발견되고 아파트 가구를 포함한 모든 재산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아는 것 같은 수상쩍은 남자들이 주변을 얼쩡거려요. 알고 봤더니 이 남자들은 찰리와 함께 OSS 소속이었고 프랑스 레지스탕스에게 조달할 금괴를 빼돌렸는데, 찰리가 이들을 또 배신해 금고를 독차지했던 거죠. 그렇다면 캐리 그랜트가 연기한 남자의 정체는? 영화 내내 너무 자주 바뀌어서 정리가 어렵습니다.

감각이 무뎌진 지금 관객들은 감이 잘 안 오겠지만 [샤레이드]는 당시 꽤 도발적인 영화였습니다. 당시엔 로맨스와 코미디가 자극적인 폭력과 공존하는 영화로 여겨졌어요. 하긴 사람들이 많이 죽기는 합니다. 단지 지금 관객들은 이 살인 장면을 관습적인 코미디로 보지만 당시 관객들은 조금 더 진지하게 반응했던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코미디가 죽었던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더 강도가 높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액션과 서스펜스는 어땠을까? 아마 그 때 관객들이 더 조마조마해하며 봤겠지요. 요새는 스릴러 영화의 강도와 속도가 높아졌으니까요. 하지만 [샤레이드]의 액션은 여전히 훌륭합니다. 캐리 그랜트와 조지 케네디의 옥상 결투 신, 오드리 헵번과 캐리 그랜트의 지하철 추적신 같은 건 별다른 잔재주 없이 날렵하고 창의적으로 구성되었지요. 강도와 속도의 기준이 올라가도 기본기가 훌륭한 액션은 여전히 그 멋과 매력을 간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주변에서 꾸준히 살인이 일어나고 주인공의 목숨도 위험하지만 영화는 이를 가볍고 발랄하게 다루어요. 늘 파자마를 입은 채 발견되는 시체들, 사라진 재산의 행방과 같은 것들은 장르의 비현실성을 극단적으로 과정하고 있어서 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스러운 초현실적 동화 같습니다. 캐리 그랜트 캐릭터는 영화 내내 이름과 정체가 계속 바뀌고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수상쩍은 인물이지만 오드리 헵번은 늘 주변에 머물며 대화와 로맨스를 끊지 않지요. 그러니까 추리와 첩보, 스릴러의 소재로 만든 로맨틱한 판타지예요. 그리고 이는 파리,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장르화되고 판타지화된 파리라는 배경을 통해 완벽하게 완성되지요.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도 영화가 조금도 무너질 기회를 용납하지 않는 건 오드리 헵번과 캐리 그랜트의 화학반응 때문입니다. 나이 차가 좀 심각하긴 하죠. 그랜트가 [로마의 휴일] 주연을 거절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건 좋은 소문이고 나쁜 소문은 오드리 헵번이 진짜 주인공이고 자긴 보조 역할이라 거절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오드리 헵번의 상대역 남자배우들은 수상쩍을 정도로 나이가 많았고 헵번은 이미 이에 익숙해졌었어요. 두 사람의 나이차를 놀려대는 농담도 영화의 자연스러운 일부고요. 재료가 아무리 수상쩍어도 스크린 위에서 꽁냥거리는 배우들이 잘 붙어 있다면 영화는 유지되는 겁니다. (20/05/05)

★★★☆

기타등등
1. [마이 페어 레이디]의 노래 가사가 잠시 인용됩니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영화판은 헵번의 다음 영화였지요.

2. 퍼블릭 도메인 영화입니다. 그건 지금 유튜브에 풀려 있는 파일들이 모두 합법이라는 뜻일까요.

3. 원작은 피터 스톤과 [아이 오브 비홀더]의 저자 마크 벰이 쓴 단편 [The Unsuspecting Wife]라고 해요. 영화 제목을 그대로 따른 소설판도 있고 그 소설은 벰에게 헌정되었다고 합니다. 위키에 보면 스톤은 [샤레이드]의 각본을 먼저 썼지만 반응이 없었고 소설을 쓴 뒤에야 팔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게 벰과 함께 쓴 단편 이야기인지, 그 뒤에 나온 소설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편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나와 있으니 후자가 맞는 거 같긴 한데. 그리고 스톤은 처음부터 캐리 그랜트와 오드리 헵번을 염두에 두고 이 이야기를 썼대요. 운좋은 사람.


감독: Stanley Donen, 배우: Cary Grant, Audrey Hepburn, Walter Matthau, James Coburn, George Kennedy, Dominique Minot, Ned Glass, Jacques Marin, Paul Bonifas, Thomas Chelimsky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6923/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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