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 Martin Eden (2019)

2020.11.03 19:56

DJUNA 조회 수:2684


[마틴 에덴]은 잭 런던의 자서전적 소설입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선원이 부르주아 가문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작가가 되려고 매진하고, 다윈과 스펜서에 매료되고... 주인공 마틴 에덴에게 일어난 일들 대부분은 잭 런던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꼭 순서대로는 아니더라도요. 소설 속 마틴 에덴의 결말은 잭 런던의 결말을 예언 또는 예고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마틴 에덴]의 시대배경은 동시대, 그러니까 20세기 초의 미국입니다. 하지만 피에트로 마르첼로는 시대배경으로 과거의 이탈리아로 옮겼어요. 원작소설의 배경보다는 미래지만 21세기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지요. 정확히 언제일까요? 군데군데 텔레비전이 나오고, 폴크스바겐 비틀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60년대 아니면 70년대예요. 하지만 구체적인 시기를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시대의 단서를 주는 데에 인색하니까요. 막연히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들'이 나오던 시기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막연한 시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가씨]처럼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일제강점기의 조선과 일본으로 옮기면 원작에는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기지요. 20세기 중후반 이탈리아는 정치적인 격동기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과는 다르지만 잭 런던의 캐릭터를 이식해 새 이야기를 끌어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어지는 시대 정보가 애매하다면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조금 어렵지요. 영화 속 마틴, 그러니까 마르틴 에덴이 당시 이탈리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충분히 자기 이야기를 찾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르틴 에덴은 원작의 마틴 에덴처럼 허버트 스펜서의 애독자입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았던 미국 작가가 스펜서에 열광한다면 우린 그냥 그러려니 할 것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를 사는 이탈리아 사람이 여전히 스펜서에 열광한다면 가까이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순서가 아닌가요?

[마틴 에덴]은 거친 소설이지만 소설 속 시대를 현재형으로 겪은 작가의 정직함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마르첼로의 영화는 이중의 과거에 갇혀 있습니다. 잭 런던의 시대와,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의 시대지요. 마르첼로의 과거는 진짜 역사보다는 옛 이탈리아 영화의 페티시적인 집착처럼 느껴집니다. 영화의 필름 룩도 그렇고, 마르틴 에덴이라는 주인공도 그렇습니다. 그 결과물은 아름답고 재미있지만, 전 좀 옛 남자들의 패셔너블한 재현이란 인상을 받았어요. 마르틴 에덴이 아무리 열정적으로 삶을 추구해도, 이런 이중의 감옥 안에서는 이야기 자체가 퇴행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0/11/03)

★★★

기타등등
[달빛]이 아닌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수록곡을 쓰는 드문 영화 중 하나입니다.


감독: Pietro Marcello, 배우: Luca Marinelli, Jessica Cressy, Vincenzo Nemolato, Marco Leonardi, Denise Sardisco, Carmen Pommella, Carlo Cecchi, Autilia Ranieri

IMDb https://www.imdb.com/title/tt451616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9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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