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이 가리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고전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타치오를 연기한 스웨덴 배우 비요른 안드레센입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안드레센의 얼굴을 알고 있을 거예요. 반 세기를 지나는 동안 아이콘화된 이미지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은 비요른 안드레센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진행시킵니다. 과거 파트에서 할머니에게 떠밀려 오디션을 본 안드레센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국제적인 스타가 되지만 그 뒤로는 영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현재 파트에서 안드레센은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살면서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역시 일은 잘 풀리지 않아요.

이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예상했던 일이죠. 안드레센은 자신의 재능으로 스타가 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표작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이 사람은 철저한 피사체로 존재해요. 여기엔 자신의 의지가 거의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미모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았고, 연예계에 들어간 건 할머니 때문이었고, 오디션 무렵에 곧 사라질 찰나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던 건 그냥 우연이었고, 나머지를 채운 건 루키노 비스콘티였지요. 스타가 되려는 의지나 개인적인 매력이 있었다면 재능 같은 게 없었어도 살아남았겠지만 이 영화 속 안드레센에겐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피사체의 껍데기만 갖고 있는 남자에 대한 착취의 역사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안드레센의 일본 활동이죠.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 안드레센은 엄청나게 많은 일본 팬들을 얻게 되었고 결국 일본에서 연예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이 하던 서양 놀이의 도구가 된 것이죠. 아, 물론 [베르샤유의 장미] 클립도 나옵니다. 이 사람이 오스칼의 모델이었다는 건 다들 아시지요. 하여간 보다보면 공감성 수치가 올라오는데, 그 절정은 일본을 방문한 나이 든 안드레센이 노래방에서 반 세기 전 자기가 녹음했던 일본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되겠습니다.

그래도 일본 활동은 웃기지만 생산적이라 하겠습니다. 그 뒤로는 내리막이 좀 심각해요. 유럽에서 안드레센은 거의 돈 많은 게이 남자들의 장신구 수준으로 추락합니다. 결혼해서 아빠가 되지만 아들이 갑자기 사망하자 결혼생활은 파탄이 나고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지요. 영화에서 그나마 상승처럼 보이는 건 [미드소마] 촬영 장면인데 그 뒤로도 이 사람의 삶이 특별히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는 게 함정이죠. 비스콘티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이 사람은 나름 안드레센을 보호하려고 했던 모양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는 별명을 붙여 인생의 방향을 멋대로 고정했고, 불공정한 계약으로 미래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여는 스크린 테스트를 보면 '이게 미성년자 착취가 아니라면 뭔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이 착취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연예계에선 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모로 경력을 시작한 연예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길을 걸었겠어요. 그 중에는 안드레센보다 훨씬 재능과 가능성이 풍부한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안드레센이 자신만의 다큐멘터리를 갖게 되었던 건 그 미모를 전시한 작품이 순전히 '불후의 걸작'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마 남자라는 것도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요. 수많은 남자들이 안드레센의 길을 걸었겠지만, 안드레센이 착취당하는 방식에는 익숙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결국 남자이기 때문에 아주 일치하지는 않고 그 때문에 차별성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만. (21/11/09)

★★★

기타등등
다큐멘터리지만 와이드스크린입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화면비를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겠지요. 몇 장면 안 나오지만.


감독: Kristina Lindström, Kristian Petri, 배우: Björn Andrésen, Riyoko Ikeda, Hajime Sawatari, Annike Andresen, Ann Lagerström

IMDb https://www.imdb.com/title/tt8801666/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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