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

2014.04.28 15:00

DJUNA 조회 수:5786


이윤복이라는 소년이 대구에 살았습니다. 병약한 아버지는 실직한 뒤 노름에 정신이 나갔고 참다 못한 엄마는 네 아이를 버려두고 집을 나갔죠. 그 와중에도 살아남으려고 아이는 동생 순나와 함께 대구 시내를 돌아다니며 껌을 팔고 구걸을 했습니다. 윤복은 그러는 동안 꾸준히 일기를 썼는데, 그게 같은 학교에 다니는 김동식이라는 교사의 눈에 들어갔고 그의 도움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나왔으니 영화화가 기획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나온 것이 신봉승 각본, 김수용 감독의 65년작 [저 하늘에도 슬픔이]였는데, 이 작품이 히트하자 70년에 속편이 나왔지요. 김수용은 1984년에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는데, 이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2007년에 한명구 감독에 의해 다시 리메이크되었는데,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시마 나기사가 같은 원작을 가지고 [윤복이의 일기]라는 중편을 만든 적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극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요.

오늘 이야기하려는 영화는 1965년작 [저 하늘에도 슬픔이]입니다. 이 작품은 60년대에 만들어진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필름이 소실되었었는데, 얼마 전에 대만에서 중국어 자막이 달린 듀프 네가티브가 발견되었지요. 지난 주 21일에 영상자료원에서 시사회가 있어서 구경하러 갔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아이들이 죽도록 고생한다는 영화입니다. 부모의 경제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60년대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버스에서 껌을 팔고, 길거리 경쟁자에게 두들겨 맞고, 장사 밑천을 다 빼앗겨 구걸을 하고, 그러다 잡혀서 희망원에 끌려가고...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후 한국 대중 문화에 끈질긴 전통을 남겨놓지요. 전 이런 이야기를 도저히 즐길 수가 없지만요.

각본가 신봉승은 이 이야기를 될 수 있는 한 사실적으로 그리려 노력합니다. 그가 목표로 삼은 건 세미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실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취재 과정 중 목격한 걸 영화에 반영하고 주인공들이 실제로 살았던 공간에서 직접 촬영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목격담이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영화의 후반부가 책이 끝난 뒤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와서 보면 영화는 신봉승의 원래 의도와 60년대 신파 감수성 사이에 위치합니다. 60년대 한국영화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파로 흐를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세미 다큐멘터리의 지향이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게 막아주는 것이죠. 이런 영화를 보면서 각오하게 되는 끈쩍거리는 느낌은 덜합니다. 그런 신파에 떨어지기엔 기본 완성도가 높기도 하고요.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는 흐릿합니다. 김동식 선생은 종종 "제2의, 제3의 윤복이가 나오는 걸 막아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윤복이는 끔찍한 일을 겪긴 하지만 60년대 당시에 윤복이보다 더 지독한 빈곤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많았겠지요. 그런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한다는 걸까? 영화는 여기서 '불우이웃에 대한 자선' 이상은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친절한 주변 사람들의 자선이 주인공 아이들이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걸 보면 그것만으로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죠. 그것까지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요. (14/04/28)

★★★

기타등등
이윤복은 책의 성공으로 가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그 뒤로 화폐가치 하락으로 다시 살기가 어려워졌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 결혼도 했지만 38살이 된 1990년에 간경화로 세상을 떴습니다.


감독: 김수용, 출연: 김천만, 신영균, 장민호, 정해정, 주증녀, 다른 제목: Sorrow Even Up in Heaven

IMDb http://www.imdb.com/title/tt032923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2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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