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공주 Sleeping Beauty (1959)

2014.03.01 21:30

DJUNA 조회 수:9475


의외로 클래식 디즈니 애니메이션 시절엔 공주 영화가 많지 않았습니다. 믿기지 않으시면 세어보세요. 단 세 편뿐입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신데렐라] 그리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오히려 [인어공주] 이후 만들어진 새로운 세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훨씬 많은 공주들을 배출했어요. 극복하려던 '원본'보다 새로운 버전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이 공주 영화들에서 중요했던 건 주인공이 '공주' 또는 미래의 '왕자비'라는 것이 아니라 원작이 '고전 동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디즈니가 소재를 가져온 이런 고전 동화의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비슷했어요. 반복하다가는 곧 진부해지죠.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만들 때 월트 디즈니가 가장 걱정했던 것도 반복이었습니다.

반복을 극복하기 위해 월트 디즈니가 택했던 것은 새로운 비주얼이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 차이가 뭔지 잘 모를 거예요. 하지만 당시 이 영화를 제대로 된 극장에서 본 관객들에겐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거의 아이맥스(요새 같은 가짜 말고)에 가까운 체험이었습니다. 70밀리 슈퍼 테크니라마 방식에 6채널 서라운드 스테레오 방식이니, 당시 사람들이 익숙했던 아카데미 비율 영화 화면의 두 배였죠. 상상을 해보세요.

단순히 크고 넓은 화면만 갖춘 게 아니었습니다. 그림체와 배경도 달랐지요. 월트 디즈니는 이 영화에서 배경을 맡았던 아이빈드 얼에게 영화 비주얼에 대한 모든 권한을 넘겼는데, 그 때문에 영화의 그림이나 배경은 이전 디즈니 영화와 전혀 달라보입니다. 중세 회화의 스타일을 기본으로 한 50년대식 모더니즘이라고 설명하면 되려나요? 그 때문에 애니메이터 동료들과 갈등이 많았다고 하던데, 그래도 이 정도 결과면 싸워볼만 했던 것 같습니다.

내용이야 다들 아는 그 동화 이야기죠. 단지 100년 뒤에 왕자의 키스를 받고 공주가 깨어난다는 이야기는 음흉하게 음란할 뿐 로맨스의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설정의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오로라 공주는 마녀 멀레퍼선트의 저주를 피해 세 명의 요정인 포나, 플로라, 메리웨더의 보호 아래서 자라는데, 16살 생일날에 이웃 나라의 필립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오로라 공주가 저주에 빠져 잠이 들자, 필립 왕자는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멀리퍼센트와 한 판 붙어야 하죠. 공주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암만 길게 잡아도 반 나절이 못 됩니다. 영화 속 시간으로는 기껏해야 20분 정도에 불과하고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저 같은 불면증 환자에게 이건 거의 모욕적이었죠.

대부분 현대 관객들은 오로라 공주와 필립 왕자에게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잘 생겼고 사랑에 빠졌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개성도 없는 존재들이니까요. 심지어 주어진 시간도 짧습니다. 오로라 공주는 지금까지 나온 디즈니 공주 중 가장 존재감이 약한 인물로 알려져 있어요. 나오는 시간은 총 18분에 불과해요. 이 영화가 1시간 15분 짜리로 좀 짧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했죠. 사건을 해결해야 할 필립도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영웅치고는 능력이 심하게 딸리죠. 뒤에서 따라오는 세 요정이 없었다면 이 친구는 모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죽었어요.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세 요정들입니다. 조금 정신 사나운 수다쟁이 아줌마들이고, 이 사람들의 실수 때문에 오로라 공주가 위험에 빠지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위기가 닥치면 대처 능력 뛰어나고 존재감과 개성이 분명합니다. 대부분 코미디를 하지만 악당을 실질적으로 때려잡는 것도 이들이니 무시할 수 없죠. 그리고 아무리 사악함 하나만을 보여주는 평면적인 캐릭터라고 해도 이 영화의 악역 멀레퍼선트의 존재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용으로 변한 멀레퍼선트와 필립 왕자...를 꼭두각시로 놀리는 세 요정의 대결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고의 순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클래식 디즈니 시대 최대 걸작으로 놓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기엔 이야기와 캐릭터가 많이 헐거운 영화예요. 비교대상으로 좋은 영화들이 너무 많고. 하지만 이 영화의 압도적인 미술과 절정에 달한 애니메이션을 싱거운 주인공들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누구 손해겠습니까. (14/03/01)

★★★

기타등등
1. [마법에 걸린 사랑]과 [겨울왕국]은 모두 이 영화에 나오는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뒤집은 영화죠.

2. 멀레퍼선트를 주인공으로 한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블록버스터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겠죠. 그랬겠죠.


감독: Clyde Geronimi, Les Clark, Eric Larson, Wolfgang Reitherman, 출연: Marvin Miller, Mary Costa, Eleanor Audley, Verna Felton, Barbara Luddy, Barbara Jo Allen, Bill Shirley, Taylor Holmes, Bill Thomp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5328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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