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Frozen (2013)

2014.01.30 14:46

DJUNA 조회 수:29286


디즈니가 한스 크리스찬 아네르슨(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각색하려고 처음 마음먹은 건 1943년 일입니다. 사뮤엘 골드윈은 아네르슨의 실사 전기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는데, 동화 속 장면만은 디즈니에게 맡겨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아 디즈니는 계획을 포기했고 사뮤엘 골드윈은 52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없는 킹 비더 감독, 대니 케이 주연의 영화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동화 파트는 발레와 뮤지컬로 표현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90년대 이후, 디즈니는 다시 [눈의 여왕]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각색 작업은 쉽지 않았죠. 멋진 이야기이고 비주얼 표현의 가능성은 환상적이지만 정작 이 이야기의 캐릭터와 분위기가 디즈니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포기와 시도가 계속 반복되다가 2011년이 되어서야 이 원작을 바탕으로 [겨울왕국 Frozen]이라는 컴퓨터 그래픽 디즈니 공주 영화로 만든다는 계획이 확정되었죠.

각색작업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은 최종 완성된 작품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제니퍼 리의 각본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아귀가 잘 맞지 않아요. 입체파 그림처럼 다양한 시도들이 이음새를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겁니다. 그 때문에 행동의 일관성이 깨지기도 하고 분명한 복선 없이 반전이 던져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눈의 여왕]의 원작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눈의 여왕'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는 것만 뺀다면요. 영화는 아렌델이라는 가상의 왕국(노르웨이를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을 배경으로 엘사와 안나라는 공주 자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킵니다. 엘사에게는 얼음과 눈을 다루는 초능력이 있는데 실수로 동생 안나를 다치게 한 뒤로 초능력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습니다. 트롤의 마법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안나는 왜 언니가 자신에게 그렇게 차갑게 구는지 몰라 당황하고요. 성년이 되어 왕위에 오른 엘사는 무사히 대관식을 치르지만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왕자 한스를 데려와 결혼하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안나에게 화를 내다가 그만 억누르고 있던 마법을 폭발시키고 맙니다. 엘사는 북쪽 산으로 달아나고 아렌델은 엘사의 마법 때문에 얼음 속에 파묻히고 안나는 언니를 설득해 마법을 풀겠다며 모험을 떠나는데, 그러는 동안 얼음장사꾼인 크리스토프와, 엘사의 마법으로 태어난 눈사람 올라프를 만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기서 스토리의 유려함을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거의 조각이불과도 같은 상태니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그게 큰 문제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분절된 덩어리들이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해석을 통해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 받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커지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한 것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아주 교묘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dcdc님 말마따나 다들 '덕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사람들인 거죠. [라푼젤]은 [겨울왕국]보다 훨씬 스토리가 좋았고 캐릭터도 잘 짜여 있었지만 그 영화는 이런 반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일단 관객들이 주인공을 받아들이면 스토리가 어디로 흐르건 그리 중요하지 않지요.

어쩌다가 이런 인물들이 만들어졌는지를 분석하는 건 까다로운 일입니다. 반쯤은 의도적으로 디자인되었지만 반쯤은 사고의 결과니까요. 어떻게 하다보니 폭풍우 같은 십대 정서, 퀴어 감수성, 초능력 주인공에 대한 대리 만족, 정치적 진보성, SF와 같은 현대 장르 공식의 조각들이 마구 섞이고 거기에 미지의 엑스가 더해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겁니다.

의도적인 시도를 본다면 기존 디즈니 공식에 약간의 입체성을 넣는 작업이 눈에 보입니다. 이것은 '공식 뒤집기'와는 다릅니다. 공식 뒤집기는 기존 공식에 괄호를 치고 거기에 마이너스를 붙이는 기계적인 작업이죠. 그러는 대신 영화는 지극히 디즈니스러운 행동이나 설정에 보다 현실적인 대응을 덧붙입니다. 이미 인터넷 밈이 된 엘사의 유명한 "막 만난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어."와 같은 것이 그렇죠. 물론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도 이에 따른 새로운 우선순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는 거의 혁명적인 도약입니다.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대부분 꽉 채워져 있습니다. 뮤지컬 넘버들은 모두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완벽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안나와 크리스토프 사이의 스크루볼 코미디나 엘사와 안나의 멜로드라마도 강도가 상당하죠. 이들을 엮는 이야기가 느슨한 건 사실인데 정작 그러는 동안에도 감정의 흐름은 깨지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스토리가 문제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알아서 넘어가버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겨울왕국]의 결과물은 아주 특이한 이상현상으로, 쉽게 복제될 수 없는 종류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꼼꼼하게 연구되어야 할 영화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런 분석 따위로 시간낭비할 생각은 없을 겁니다. 팬질의 쾌감이 몇 배는 더 크니까요. (14/01/30)

★★★☆

기타등등
[Tangled]가 [라푼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걸 생각해보면 [Frozen]도 [눈의 여왕]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될 가능성이 높았죠. 하지만 이미 같은 원작을 각색한 [눈의 여왕]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몇 개월 전에 나와버렸으니 [겨울왕국]을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감독: Chris Buck, Jennifer Lee, 출연: Kristen Bell, Idina Menzel, Jonathan Groff, Josh Gad, Santino Fontana, Alan Tudyk, Ciarán Hinds, Chris Williams

IMDb http://www.imdb.com/title/tt229462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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