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에게 영화감독 형이 있었다는 거 아세요? W. 리 와일더라는 사람인데요. 미국에 이민 온 뒤 뉴욕에서 핸드백을 만들다가 1945년에 할리우드로 가서 영화 제작과 감독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모르는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게 기억할 만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킬러스 프롬 스페이스]는 W. 리 와일더가 주로 싸구려 SF 영화를 만들던 50년대 작품입니다. 스토리를 썼다고 나오는 마일즈 와일더는 아들, 그러니까 빌리의 조카예요. 이 당시 아버지와 협업한 작품이 꽤 되는데 그 뒤로는 주로 시트콤 작가로 활동했던] 모양이더라고요.

[킬러스 프롬 스페이스]의 주인공은 더글러스 마틴이라는 과학자인데, 핵폭발 실험을 위해 탔던 비행기가 그만 수상쩍은 상황에서 추락해버립니다. 그런데 마틴은 며칠 뒤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요. 가슴에 수상쩍은 수술 상처가 남아있긴 한데 왜 생겼는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뒤 마틴은 적국의 스파이처럼 행동하다 병원에 끌려가고 약물을 주입당한 채 기억을 되살립니다. 알고 봤더니 근처에 있던 외계인이 추락현장에서 마틴을 되살려 스파이로 삼았던 것이죠. 이들은 거대하게 부풀린 곤충과 파충류를 이용해 지구를 정복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에 자주 나왔던 흔해빠진 외계인 침공물입니다. 거대한 곤충과 파충류 설정은 순전히 원래 있던 푸티지를 재활용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고요. 보고 있으면 그 초라함에 한숨이 나옵니다. 탁구공에 점을 찍은 것 같은 눈을 한 외계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 초라한 환경에서 열심히 연기하는 마틴 역의 피터 그레이브스를 보고 있으면 존경심이 올라옵니다.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것은 영화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마틴의 회상이 지금은 보편화된 '외계인 납치' 경험의 전형성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 영화가 '그레이 외계인의 지구인 납치' 스토리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나봐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본 사람이 너무 적지 않을까요. (20/04/27)

★☆

기타등등
2002년에 [Don't Ask Don't Tell]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이 영화를 새로 더빙하고 새로 찍은 장면들을 추가해 만든 코미디였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지구인들을 몽땅 게이로 만들려는 외계인이 등장한다고 해요.


감독: W. Lee Wilder, 배우: Peter Graves, Barbara Bestar, James Seay, Frank Gerstle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47149/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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