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움 Elysium (2013)

2013.08.17 01:54

DJUNA 조회 수:15379


닐 블롬캠프의 [엘리시움]에서 '엘리시움'은 지구 궤도에 떠 있는 바퀴 모양의 스페이스 콜로니입니다. 지구가 환경오염과 인구과잉으로 끔찍한 곳이 되자,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지구를 떠나 엘리시움으로 갔지요. 이로서 SF 장르에서 단골로 쓰는 극단적인 계급 분리가 이루어집니다.

영화는 빈민굴로 변해버린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가 공장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된 주인공 맥스가 엘리시움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는 그렇게 죽어라고 엘리시움으로 올라가려는 걸까요? 그건 엘리시움의 모든 집에는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만능 의료 기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 때문에 엘리시움의 시민들은 병에 걸리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동기부여용 도구로서 만능 의료 기계는 지나치게 단순한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까지 없다면 엘리시움으로 올라갈 이유 자체가 없을 거예요. 월스트리트와는 달리 엘리시움은 지구로부터 거의 완전하게 격리되어 있는 곳이니까요. 그들이 가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 경제 시스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식으로 움직일지도 몰라요. 가족이나 결혼의 의미도 다를지 모르죠. 이론상 그들은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영화는 엘리시움의 가능성을 탐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블롬캠프가 택한 주제나 스타일과 맞지 않거든요. 그 방향으로 가도 그렇게 재미있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관객에게 와닿는 이야기를 만들기는 어렵겠죠.

대신 영화는 21기 초 지구의 계급격차를 극도로 과장한 모습의 미래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블롬캠프가 만들어낸 이 세계에는 강한 현실감이 있어요. (멕시코에서 찍었다는) 로스앤젤레스의 묘사는 압도적이고 엘리시움의 세계도 그럴싸합니다. 특히 구식 SF의 팬들은 엘리시움의 묘사에 향수가 느껴질지도 몰라요. 옛날엔 지금 쯤 이런 게 하나 궤도 위에 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단지 이 묘사들을 통해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묘사 자체만큼 좋지는 않습니다. 맥스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엘리시움으로 간다, 그 과정 중 엘리시움의 실력자인 델라코트가 꾸미는 음모와 엮이다가 구세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로 흐르는 이야기는 빈약한 편이고, 결말은 지나치게 딱딱 맞아 떨어져서 큰 감흥이 없습니다.

나머지 러닝타임은 몽땅 액션에 투자됩니다. 일단 발동이 걸리면 맥스는 멈추지 않아요. 멈추고 싶어도 뒤에서 인간 사냥꾼 크루거가 쫓아오니 그럴 수가 없지요. 그 때문에 맥스의 고통이 아무리 절실하고 계급 문제가 끔찍해도 영화의 모든 것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물리적 충돌로 귀결된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엘리시움]은 쉽게 버릴 만한 영화가 아닙니다. 지나치게 단순화되었을 수는 있어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강한 고통과 분노가 있고, 그 감정들을 유발하는 디스토피아의 현실감은 뛰어나며, 이들은 모두 우리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그리고 이들을 그려내기 위해 블롬캠프가 선택한 SF 도구들도 잘 쓰였습니다. 마지막 것만으로도 영화를 옹호하기는 충분해요. 그리고 여러분도 블롬캠프가 할리우드로 가서 당장 [디스트릭트 9]과 같은 영화를 하나 더 만들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13/08/17)

★★★

기타등등
언론 시사회 때는 사운드와 화면의 싱크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더군요.


감독: Neill Blomkamp, 배우: Matt Damon, Jodie Foster, Sharlto Copley, Alice Braga, Diego Luna, Wagner Moura, William Fichtner, Brandon Auret

IMDb http://www.imdb.com/title/tt153510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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