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 링 The Bling Ring (2013)

2013.09.02 21:58

DJUNA 조회 수:13204


소피아 코폴라의 [블링 링]은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입니다. 2008년부터 2009년 사이에 캘리포니아에 사는 십대 청소년 몇 명이 패리스 힐튼, 올란도 블룸, 린지 로핸, 레이첼 빌슨과 같은 유명인사들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가 물건들을 훔쳤어요. 이들의 리더였던 레이첼 리는 한국계였는데 이건 우리에게나 재미있는 정보고요.

캐릭터 이름과 설정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크게 변한 게 없습니다. 그건 코폴라가 융통성있게 이야기에 접근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재가 된 이야기에서 변주할 만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머릿속에 든 게 별로 없는 돈 많고 시간 많은 애들이 유명한 사람들 집에 들어가 놀다가 물건들을 가지고 나왔다가 나중에 잡혔습니다. 그게 다예요.

그들의 범죄는 피상적인 흥미를 끌지만 대단한 서스펜스를 유발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꼭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피해자들이 그 범죄로 크게 다칠 일이 없는 돈 많고 유명한 스타들이니까요. 아, 그리고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문 관리를 안 하는 거랍니까? 얘들은 집에 들어가기 위해 특별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에요. 문 밑 매트 밑에 놓아둔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지요! 자업자득.

물론 이 이야기는 현대 미국 대중문화의 유명인사 집착과 명품 페티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의미있는 주제겠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안 듭니다. 그런 것이 마음 깊이 다가오기엔 주인공 아이들이 너무 공허해요. 위에 언급된 사회문제보다는 아이들의 공허함이 문제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죠. 얘들이 유명인사를 숭배하거나 명품에 집착하지 않았어도 다른 무언가가 그 아이들의 텅 빈 마음을 잡아먹었을 거예요. 그게 종교였을 수도 있고 뉴 에이지 운동이었을 수도 있고, SNS였을 수도 있고... 하여간 '누가' 걔들을 잡아먹었는가는 별로 안 중요합니다. 걔들이 왜 그렇게 먹히기 쉬운 존재였는지가 더 중요하죠.

...그러나 그 쪽으로 갔어도 결말은 같았을 겁니다. 기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어요. 이 영화의 캐릭터들에게 의미있는 드라마를 만들만한 깊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요. 관객들은 이들을 놀려대고 비웃을 수는 있지만 거기서 더 나가지를 못합니다. 심지어 범죄의 흥분도 없죠. 영화를 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는 있는데, 정작 영화의 감상 자체는 얄팍해요. 전 코폴라의 영화에는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캐릭터와 어떤 접점도 느낄 수 없었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하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영화를 전작들보다 좋게 볼 사람도 없지는 않겠군요. (13/09/02)

★★☆

기타등등
실화를 따른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레이첼 리를 모델로 한 레베카 안이겠죠. 꽤 비중이 큰 역할이긴 합니다. 주인공처럼 행세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레베카와 그 캐릭터를 연기한 케이티 장(배우는 한국계 혼혈입니다)은 홍보에서 소외되어 있어요. 중반 이후로는 수상쩍을 정도로 분량이 줄어들고요. 인종차별 문제보다는 스타 파워의 문제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감독: Sofia Coppola, 배우: Katie Chang, Israel Broussard, Emma Watson, Claire Julien, Taissa Farmiga, Georgia Rock, Leslie Mann, Carlos Miranda

IMDb http://www.imdb.com/title/tt213228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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