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Nagai iiwake (2016)

2017.02.05 17:19

DJUNA 조회 수:4877


니시카와 미와가 자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아주 긴 변명]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가 사치오는 참으로 가증스러운 인간입니다. 제목이 올라가기도 전에 관객들은 이 남자가 얼마나 한심한 종자인지 알게 됩니다. 영화는 '알고 보면 사정이 있겠지' 따위의 여유도 주지 않습니다. 글쟁이 남자의 자존감 부족과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 최악으로 엮여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헤어스타일리스트인 아내는 옛날 학교 단짝과 시골로 여행을 떠나고 사치오는 빈 집에 불륜상대인 젊은 여자를 불러 들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탄 버스가 그만 사고를 당해 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고 말았네요. 그러는 동안에도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작가' 연기를 하면서 인터넷으로 반응이나 살피고 있던 사치오에게 뜻밖의 일이 닥칩니다. 같이 죽은 아내 친구 남편인 요이치와 엮이게 된 거죠. 그 집 가족과 그냥 밥이나 같이 먹고 헤어지면 되었을 텐데, 그만 그는 요이치의 두 아이에게 눈길을 주고 맙니다. 결국 요이치가 트럭 운전이라는 생업이 종사하는 동안, 그는 요이치의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며 곧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의 시험을 봐주게 됩니다.

조금은 심술궂은 대안 가족 이야기입니다. 최악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자를 만들어놓고 그에게 엉뚱하게도 자기랑 별 상관이 없는 집안의 '전업주부 엄마' 역할을 주는 거죠. 그것도 억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사치오는 영화 내내 자발적입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죠.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작가' 역할을 연기하는 게 좋다면 '아내를 애도하면서 자기랑 별 상관이 없는 가족의 아이들을 자발적으로 돌보는 작가' 연기도 해볼만하지 않겠어요.

[아주 긴 변명]을 비슷한 상황을 다룬 '힐링 영화'와 구별되는 점은 사치오 캐릭터의 이런 불순함에 있습니다. 물론 그는 요이치의 가족과 엮이면서 성장도 하고 힐링도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경계를 분명하게 긋지 않죠. 그 경계선 사이에서 영화의 이야기는 재미있어집니다. 분명 사치오는 작가 겸 방송인으로서 이 상황을 이용하고 있고 그 사실 자체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불순함 때문에 그가 아이들과 쌓아가는 가족의 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결과 영화는 끔찍한 사고와 그에 따른 애도의 과정을 그리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재미있는 코미디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코미디는 그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의 무시할 수 없는 기반이죠.

감독의 스승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와 비교될 만 한데, 그래도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면 남자 주인공에게 이렇게 객관적이지도, 냉정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고보니 [매기스 플랜]에 이어, 가증스러운 글쟁이 남자를 다룬 여성감독의 영화를 연달아 본 셈이네요. (17/02/05)

★★★☆

기타등등
이 영화를 보다가 주연배우 모토키 마사히로의 얼굴에 제가 별로 호감을 줄 수 없는 모 연예인의 모습이 언뜻언뜻 겹쳐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전엔 몰랐는데.


감독: Miwa Nishikawa, 배우: Masahiro Motoki, Eri Fukatsu, Haru Kuroki, Sôsuke Ikematsu, Shigeyuki Totsugi, Maho Yamada, Keiko Horiuchi, Jiji Bû, Katsuya Kobayashi, Tamaki Shiratori, Pistol Takehara, Kenshin Fujita, 다른 제목: The Long Excuse

IMDb http://www.imdb.com/title/tt483706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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