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선생님 Selskaya uchitelnitsa (1947)

2017.05.07 23:51

DJUNA 조회 수:3324


[마을 선생님]이라는 소련 영화를 봤어요. 1947년작이니까 스탈린 정권 때 나온 정치 선전 영화죠.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좀 새마을 운동 영화 같습니다. 시베리아 시골 마을 선생님의 일대기거든요. 이런 영화에서 학교 선생님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주인공 바르바라는 영화가 시작될 때 도회지 출신의 젊은 학생입니다. 졸업할 무렵에 세르게이라는 젊은 혁명가와 연애를 하는데, 결혼식 직전에 세르게이는 체포되어 끌려가죠. 홀로 세르비아의 시골마을에 간 바르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홀몸으로 학교를 일으켜 세웁니다. 3년 뒤 세르게이는 바르바라를 찾아 마을로 오고 둘은 결혼하지만 곧 다시 잡혀가요. 그러는 동안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의외로 잘 만든 영화입니다. 스탈린 정권 시대의 선전 영화라고 한다면 대충 떠오르는 상이 있잖아요. 이 영화는 그걸 많이 깨트립니다. 우선 영화적인 매력이 상당해요. 도입부의 학교 무도회 장면 같은 건 굉장히 아름답고 세련되게 찍혔지요. 하긴 2,3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은 영화예술의 첨단을 걸었던 나라인데, 40년대라고 그 기운이 완전히 죽었을 리는 없잖아요. 중간중간에 레닌 동지에 대한 예찬이 흥을 깨트리긴 하지만 바르바라와 세르게이의 이야기도 무리한 강요없이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고요.

천진난만한 학교 선생이 혁명 전후의 역사를 겪으면서 단단하게 성장해가는 과정도 공감할만 합니다. 바르바라가 혁명에 마음을 여는 건 자신이 가르친 우등생이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경험 때문이죠. 제가 선생이라도 그 아이에게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을 따르겠어요. 전 바르바라가 무시 받는 도회지 출신의 젊은 여자에서 자부심 강한 학교 교사로 성장하는 과정도 좋았더랬습니다. 자신을 살해하려는 마을 사람에게 "지금까지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모두 내 군대야!"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통쾌하기 그지없어요.

근데 혁명 이후로는 아무래도 영화가 뻣뻣해져버립니다. 레닌 동지, 스탈린 동지가 지나치게 자주 언급되고 "나는 너희들에게 꿈꾸는 법을 가르칠 거야"라고 말하던 로맨틱한 선생이 독일군에게 살해당한 어린 소녀의 사진을 흔들면서 학생들을 선동하는 나이 든 공산주의자가 되는 과정은 아무래도 실망스럽습니다. 반 세기가 넘는 세월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질 때와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가 된 것입니다. 40년대 소련 관객들이 본 영화는 제가 본 영화보다 훨씬 씩씩하고 긍정적인 작품이었겠죠. (17/05/07)

★★★

기타등등
이 영화의 감독 마르크 돈스코이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80년대까지 체제 안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이지만 작품세계나 경향은 의외로 좀 재미있더군요. 몇 편 더 챙겨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감독: Mark Donskoy, 배우: Vera Maretskaya, Pavel Olenev, Daniil Sagal, Vladimir Lepeshinsky, Vladimir Maruta, Vladimir Belokurov, Anatoli Gonichev, Emma Balashova, Dmitri Pavlov

IMDb http://www.imdb.com/name/nm023309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3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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