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메리 앤 셰퍼와 앤 배로우즈의 서간체 소설이 원작입니다. 메리 앤 셰퍼의 첫 소설이었는데, 책이 완성되기 전에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진 셰퍼는 조카인 앤 배로우즈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세상을 떴습니다. 아, 두 사람 다 미국인이에요. 영국 소설 같지만 미국 작가가 쓴 소설이죠. 전 이 시기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 책도 몇 년 전에 읽었는데, 솔직히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이번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판을 보는 동안 흐릿하게 내용이 다시 떠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어요.

영화의 무대인 건지 섬은 채널 제도에 있는 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게 점령된 유일한 영국 영토였지요. 이 사실을 모르고 보면 역시 건지섬을 배경으로 한 [디 아더스]를 오독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도 독일군 점령 시기고요.

영화 속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통금을 넘긴 건지 섬 사람들이 독일군에게 변명하느라 둘러대다 굳어진 모임입니다. 라디오도 빼앗기고 신문도 배달되지 않아 외부로부터 정보가 차단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몇 권 안 되는 책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전쟁이 끝난 뒤, 멤버 중 한 명인 농부 도시 애덤스를 통해 이 모임에 대해 알게 된 작가 줄리엣 애쉬튼은 새 책의 소재를 얻기 위해 건지 섬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이 모임 사람들은 줄리엣을 환영하면서도 이 클럽을 연 엘리자베스 매케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길 꺼려하는 것 같습니다. 전쟁 중에 엘리자베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궁금증이 당기는 도입부인데, 영화에는 이 궁금증이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일단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엘리자베스 매케나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엘리자베스에게는 온전한 인물이 될만한 충분한 재료와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막연히 정의롭고 씩씩하고 영리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부예요. 회상 속에 갇혀 있는 엘리자베스에 비해 북클럽의 다른 멤버들은 이미지가 조금 더 뚜렷한데, 그래도 북클럽 멤버라는 특성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닙니다. 줄리엣은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솔직히 이 사람은 전체 균형을 고려해보면 비중이 너무 커요. "줄리엣이 부유한 미국인과 도시 애덤스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같은 질문의 해답은 전혀 안 궁금했고요. 이는 원작의 한계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디테일이 풍부한 서간체 소설을 극영화로 옮길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탓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스토리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잖아요.

기대이상의 무언가를 주지는 못하지만 깊은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어느 누구의 마음도 심하게 거슬리지 않으면서, 적당히 전쟁의 비극과 멜로드라마를 섞어낸 얌전한 영국 영화예요. 90년대라면 더 재미있게 보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18/08/12)

★★☆

기타등등
영국에서는 극장개봉했고 그밖의 나라에서는 넷플릭스로 풀렸죠. 역시 릴리 제임스가 나오는 [맘마미아! 2]의 개봉과 맞춘 건지 궁금합니다. [맘마미아! 2]가 이번 주에 개봉한 우리나라에서는 타이밍이 딱 맞았죠.


감독: Mike Newell, 배우: Lily James, Jessica Brown Findlay, Tom Courtenay, Matthew Goode, Michiel Huisman, Katherine Parkinson, Glen Powell

IMDb https://www.imdb.com/title/tt1289403/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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