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강간하려던 의붓아버지를 죽인 뒤로, 쿄코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게 됩니다. 이제 쿄코의 인격은 넷으로 갈라졌어요. 쿄코, 동성애자인 나오미,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이성애자인 유카리, 그리고 아직 어린 여자아이인 하루. 어른이 되어 프랑스 레스토랑의 직원으로 일하는 쿄코는 같은 아파트에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인 타지마를 만나지만, 쿄코의 다른 인격들은 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특키 쿄코와 애인 사이인 나오미는요. 그런데 쿄코 어머니의 젊은 애인 료타와 어머니가 차례로 살해당합니다. 아무래도 쿄코의 다른 인격 중 한 명인 것 같은데 누구일까요?

올해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는 두 편의 나카타 히데오 영화가 들어왔어요. 하나는 오이시 케이의 소설을 각색한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이고 다른 하나는 [링] 시리즈의 최신작인 [사다코]입니다. [사다코]는 평이 아주 안 좋던데 안 보았고요.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는 재미있는 재료가 꽤 많은 편인데, 아주 좋은 영화라고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최종 결과물이 재미없다고도 말은 못하겠고.

일단 아이디어가 재미있잖아요. 이전에 분명 사례가 있겠지만 '아, 이런 것도 되는구나'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들이 꽤 되지요.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나오미는 동성애자인 것에 그치지 않고 쿄코와 섹스를 합니다. 적어도 전 이런 설정을 전에 본 것 같지 않아요. '여러 인격 중 하나가 범인이다'는 보다 흔하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이덴티티]입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낡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네 명의 배우가 각각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방식도 해볼만하고요.

그런데 이 재료들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낡았어요. 20세기에 나와야 할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일단 영화가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부터 움찔하게 되잖아요. 성폭력 희생자가 동성애자 인격을 만들어내서 이 인격과 피학적인 섹스를 하는데, 갑자기 맘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고 그 동성애자 인격이 질투하고. 쿄코와 나오미의 섹스 역시 피상적이고 선정적이며 눈요기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지요. 이게 1970년대 로망 포르노 영화라면 '어, 이런 것도 했네?'하며 신기해하겠지만 지금은 21세기도 5분의 1을 넘긴 때. 다른 접근법이 필요해요.

이성애 이야기로도 그렇게 좋지는 못해요. '성폭행의 기억 때문에 남자들을 혐오하는 이성애자 여성의 욕망과 사랑'은 충분히 가치있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게 먹히지 않는 것이, 영화는 쿄코가 아닌 타지마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보고 있어요. 타지마는 감독이나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어떤 성적 매력도, 개성도, 미모도 없는 그냥 '작가' 캐릭터라서, 이 남자가 쿄코를 좋아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쿄코가 왜 이 남자를 좋아하는지는 숙제하듯 노력해가며 억지로 이해해야 합니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후반 섹스신에서도 타지마는 존재감이 없어요. 열심히 하긴 하는데 심지어 그 장면에서도 쿄코는 나오미와 섹스를 하거든요. 정말 "너 어디 갔니"라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는...

전 추리 요소가 좀 있는 호러물, 그러니까 나카타 히데오가 이탈리아 지알로스러운 소재를 자기식으로 재해석한 영화를 기대했는데, 영화 자체는 선정적인 섹스신에 집중하는 로망 포르노 스타일의 영화였어요. 감독이 요새 이런 걸 만들고 싶어한다는데, 제가 간섭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런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감독이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죠. (19/07/19)

★★☆

기타등등
원작에서는 쿄코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던데, 영화와 캐릭터가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


감독: Hideo Nakata, 배우: Rin Asuka, Shin'ya Hamada, Airi Matsuyama, Kenji Mizuhashi, Hitomi Nakatani, Toshie Negishi, Mutsuo Yoshioka, Shôka Ôshima, 다른 제목: The Woman Who Keeps a Murderer

IMDb https://www.imdb.com/title/tt9844358/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629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