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밀정원 (2020)

2020.04.23 20:38

DJUNA 조회 수:3058


오래간만에 극장에서 신작 한국 영화를 보았어요. 김인식의 [그녀의 비밀정원]요. 상영관 안에는 저 밖에 없었지요. 처음 겪는 일도 아니지만. 얼마 전에 [시체들의 새벽]을 극장에서 혼자 보았는데, 감상이 끝내줬습니다.

위의 문단에는 잘못된 정보가 하나 섞여 있습니다. [그녀의 비밀정원]은 신작이 아닙니다. 영화가 끝난 뒤 검색하고 뒤늦게 알았어요. 아리랑 TV에서 한 동안 했던 [영화, 한국을 만나다] 시리즈가 있잖아요. 그 중 세 번째 시리즈를 위해 만들어진 2011년작 [매화 광주]가 제목을 바꾸고 개봉하는 것이었어요. 이미 텔레비전에서 방송도 되었던 작품인데 왜 굳이 다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그녀'는 예지원이 연기한 현재입니다. 주인공 같지만 아니에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장서라는 남자입니다. 현재는 장서와 장서의 동생 충서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 떠났어요. 그리고 갑자기 다 큰 아들과 함께 장서가 사는 광주로 왔습니다. 세 사람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여기서부터 궁금해져야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될 텐데, 영화는 그러지 못합니다. 일단 이런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의 경우의 수는 얼마 없잖아요. 아주 이야기를 과격하게 뒤틀지 않는 한 다 예측가능한 이야기이고 '두 형제 사이의 한 여자'라는 설정의 진부함을 벗어던질 수준은 아닙니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분위기를 잡아도 현재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고요. 사연도 공허하기 짝이 없지요. 아들과 함께 여기저기 초라한 숙소를 떠돌며 살았는데, 얼마 전까지는 몬트리올에 있었다네. 아무 일도 안 하고 술만 마시면서 세계를 떠돌고 있었던 거예요. 게다가 그 동안 아들은 펜싱 선수가 되었는데... 전 이 모든 게 가소롭게 들립니다.

이는 현재에게 부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재미없는 이유는 주인공 장서가 현재를 그렇게 보기 때문이고, 장서는 사람의 내면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얄팍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주인공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에요. 이 영화가 매력없는 이유의 80 퍼센트가 장서 때문이에요. 돈 많은 집에서 고생 없이 자랐고, 이 사람이 진짜로 사랑하는 건 집안 환경과 돈을 통해 익힌 자신의 취향이에요. 영화는 장서가 현재나 충서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보다 이 사람이 자기 소유인 한옥집, 그림, 식기들에 대한 애정을 더 많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춰요. 자기 취향에 대해 우쭐거리면서 자랑하는 것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이 사람의 대사 전부가 80년대 한국 영화처럼 들리는 것도 이 모든 게 연기이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주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그 사람의 뇌가 그렇게 재해석했기 때문이겠지요.

기획영화의 틀은 영화에 매력이 될 수도 있고 장애가 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입니다. 제작 과정을 알고 보면 몇몇 설정이 설명되긴 해요. 광주가 무대인 건 [영화, 한국을 만나다]의 시리즈에서 광주 파트이기 때문이죠. 현재의 아들이 펜싱 선수인 건 U대회 조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를 홍보한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를 모르고 보면 이들은 모두 어색하게 보이니 이건 완전히 실패인 거죠. 경치는 좋아요. 유일한 장점이지요.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을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은유화 한다'는 의도는 당황스럽습니다. 후반의 참배 장면은 알고 봐도 더 생뚱맞고. (20/04/23)

★☆

기타등등
충수 주변 예술가들 역할로 대사 전달이 서툰 비전문 배우들이 몇 명 나오는데, 다들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카메오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감독: 김인식, 배우: 예지원, 최우제, 강은우, 김동길, 다른 제목: Invitation, 매화 광주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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