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 야오츠의 1978년작 [월몽롱조몽롱(月朦朧鳥朦朧)]은 경요 원작, 임청하 주연의 대만 멜로드라마입니다. 오늘이 [영화와 공간: 타이페이] 온라인 상영의 마지막 날이라 허겁지겁 보았습니다. 임청하의 대만 시절 영화를 한 편은 봐야 하지 않겠어요?

임청하는 여기서 링샨이라는 유치원 교사로 나와요. 옆집엔 좀 심하게 말썽쟁이인 추추라는 여자애가 살고 있지요. 애의 난동을 견디지 못한 링샨은 처음 만난 날 그 아이에게 체벌을 가해요. 그 날 왜 자기 딸을 때렸냐고 항의하는 아버지 펭페이를 만나고요. 정말 어이가 없는 게 러닝타임이 몇 분 지나기도 전에 펭페이 역시 추추에게 정말 심각한 체벌을 가해요.

여기서부터 전 어이가 없는 거죠. 아이는 매우 심각한 상태예요. 모르는 사람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고 가정부 옷에 불을 지른다고요. 이 정도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아이의 상태가 개선되는 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여야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생각은 달라요. 그리고 문제가 있는 다섯 살 아이를 체벌한다며 구타하는 건 별로 거슬리지 않나봐요! 그 동안 동아시아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많이 바뀐 겁니다. 그건 우리가 당시 대만 관객과 같은 방식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추추는 링샨의 유치원에 들어갑니다. 그 동안 아이가 조금 나아지긴 한 것 같은데 충분치는 않아요. 그리고 우린 그 아이의 개선 과정을 그리 오래 보지 못하지요. 영화는 링샨과 펭페이의 연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에 몰입이 불가능한 또다른 이유가 있어요.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좀 어렵지만 임청하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펭페이 역의 진상림은 진지하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요새 취향의 미남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흉물스러운 70년대 남자 패션과 70년대식 '동아시아 남자 연기'가 결합되자 정말 웃긴단 말이에요. 끝까지 징징거리고 자학하는 캐릭터라 짜증만 나고.

영화 중반부터는 조금 [레베카]스러운 전개가 있습니다. 링샨이 펭페이의 전처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죠. 몰래 펭페이의 일기를 훔쳐 읽고 만난 적도 없는 여자를 질투하고. 하지만 언제까지 뒤 모리에/히치콕의 방향으로 가지는 않아요. 곧 펭페이의 전처가 나타나고 아이를 둘러싼 동아시아스러운 멜로드라마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이 전처라는 사람도 좀 심각하게 정이 안 가는 사람이에요. 이 영화에는 정이 가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추추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다섯 살 아이라는 핑계라도 있었죠. 어른들은 무슨 핑계가 있는지.

재미가 없느냐? 그렇지는 않아요. 속도는 빠르고 스토리의 막장력이 장난이 아니죠. 그리고 그것들이 다 불만족스럽다 해도 70년대 대만 시절 임청하를 볼 수 있잖아요. 단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정상적인 감상은 불가능해요. 파티 때 틀어놓고 어이없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낄낄거리며 볼 수 있는 재미인데, 아, 전 고통받는 아이가 나오는 영화를 그런 식으로 소비하고 싶지는 않아서. (20/06/29)

★★☆

기타등등
임청하와 진상림은 실제로도 한동안 연인사이였고 여기엔 배배 꼬인 이야기가 있지요. 그걸 여기서 굳이 읊을 필요는 없고.


감독: Yao-Chi Chen, 배우: Brigitte Lin, Charlie Chin, Yi-chun Lai, Ling-Ling Hsieh, Fei Fei Feng, Wen-Ching Lin, Meng Yen Liu, 다른 제목: Moon Fascinating, Bird Sweet, Misty Moon

IMDb https://www.imdb.com/title/tt0811165/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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