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1 20:30
줄리아는 쌍둥이 언니 주디스가 6년 전에 안톤이라는 남자를 살해하는 걸 보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시간이 이상하게 많이 남아도는 것 같은 마누엘이라는 형사가 줄리아를 끌고다니면서 사건을
수사하는데, 조금씩 밝혀지는 진상은 당연히 줄리아가 주장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겁에 질린 얼굴로 횡설수설하는 첫 모습부터가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더라니.
믿을 수 없는 화자, 고풍스러운 세트 안에 갇힌 하얀 잠옷을 입은 자매, 배배 꼬인 주관적
진실. 아토 바우티스타의 [쌍둥이자리]는 필리핀판 [장화, 홍련]입니다. 단지 [장화, 홍련]과는
달리 현재의 수사 파트 비중이 커요. 회상과 판타지 장면은 컬러, 현재의 사실 장면은 흑백으로
표현되는 영화입니다. 여기에서 다른 소설/영화를 연상하시는 분도 계실텐데 양쪽 모두에 스포일러이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쌍둥이에 대해 갖고 있는 온갖 미신들을 총동원해 극대화한 영화입니다. 모두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하지만 이 영화의 쌍둥이 묘사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거의
수학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자매가 겪는 고통 역시 수학문제를 푸는 것 같은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호러/판타지 영화이니 이 정도 과장은 놀랍지 않은데, 영화가 이 소재들을 다루면서 수많은
장르 이야기꾼들이 지난 수 천 년 동안 거쳐온 길을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는 건 실망스럽습니다. 러닝타임이 이어지는 동안 영화는 여러 차례 반전을
제시하는데 그것들이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그냥 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아서 앞으로
등장할 반전들의 순서까지 맞힐 수 있을 정도죠. 이 정도면 반전의 무게를 줄이고 다른
데에 집중하면 좋을 거 같은데 이 영화엔 그 정도 여유가 없습니다. 간신히 주어진
이야기를 짜맞추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해요. 이런 걸 보면 비슷한 정도로 진부한 반전들을
훨씬 효과적으로 다룬 [장화, 홍련]은 참 잘 만들어진 영화란 말이죠.
(14/07/21)
★★
기타등등
비스타관에서 봤는데 화면 양쪽에 블랙 바가 뜨는 걸 보면 화면비율이 1.66:1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감독: Ato Bautista, 출연: Sheena McBride, Brigitte McBride, Mon Confiado, Lance Raymundo, Sarah Gaugler, Alvin An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376497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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