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패러독스 Predestination (2014)

2015.01.07 18:59

DJUNA 조회 수:8902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은 1958년 7월 11일에 [All You Zombies]라는 짧은 단편을 하나 썼습니다. 이 작품은 타임머신과 시간여행 패러독스를 담은 일종의 농담입니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시간여행 패러독스를 과장해 그린 건데, 사실 자세히 따지면 말이 안 됩니다만, 그래도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이 단편을 읽는 운좋은 독자들은 "뭐, 이런 골 때리는 이야기가 있어!"라는 고함을 지르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지금은 그런 독자가 되기가 좀 어렵죠. 하인라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들도 영향을 받은 작품들과 소문을 통해 이 이야기를 희미하게 알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스피릭 형제의 [타임 패러독스]는 이 단편의 각색물입니다. 그건 영화 보기도 전에 알고 있었어요. 몰랐던 것은 이 영화가 예상 외로 원작에 충실하다는 것이었죠. 거의 [TV 문학관] 수준입니다. 스피릭 형제가 추가한 건 앞뒤에 나오는 폭탄 테러리스트 이야기와 노아 테일러가 연기하는 로버트슨이라는 캐릭터가 전부. '미혼모'와 '바텐더'의 대화로 시작하는 구성은 거의 똑같습니다. 원작에서 그대로 카피해온 대사도 만만치 않게 많고요. 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원작의 시대배경도 그대로 가져왔다는 거죠. 하인라인의 소설에선 60년대 이후는 모두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미래입니다. 하지만 스피릭 형제에겐 60년대 이후의 시대는 일종의 평행우주지요.

스피릭 형제가 더한 것. 새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해골 같은 원작에 살을 붙이다보니 발랄한 곡예와 같은 원작에 상당히 심각한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갔어요. 여기서 진짜 주인공 역할을 하는 건 '미혼모' 역의 사라 스눅입니다. 뜻밖에도 절절하기 짝이 없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이 어처구니 없는 캐릭터에게 공감하고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이게 스피릭 형제 영화의 가장 큰 공헌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인라인이 반 세기 전에 했던 것의 재탕이고.

조금 덜컹거리는 영화입니다. 가벼운 농담 따먹기였던 원작의 내용이 일종의 액션 스릴러로 포장하려는 영화의 의도와 잘 맞지 않으니까요. 음악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앞뒤의 액션도 그렇고, 좀 붕 뜬 구석이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요새는 보기 드문 정통 SF 고전의 충실한 각색물이니까요. 이런 걸 극장에서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15/01/07)

★★★

기타등등
사라 스눅은 조디 포스터를 정말 많이 닮았더군요. 외모도 그렇지만 목소리와 연기 스타일도 그래요.


감독: Michael Spierig, Peter Spierig, 배우: Ethan Hawke, Sarah Snook, Noah Taylor

IMDb http://www.imdb.com/title/tt239753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834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