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5구의 여인]은 얼마 전부터 국내에서 갑자기 인기를 끌기 시작한 더글러스 케네디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케네디의 많은 소설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낯선 지역에서 생고생을 하는 지식인의 이야기입니다. 술술 읽히기도 하고 재미도 있는데, 막판 반전에 뜬금없어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도 그 중 한 명. 눈치를 못 챈 게 아니라 작가가 정말 그 길을 택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어요. 반전을 통해 소설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니까요. 전 단편 아이디어를 부풀린 장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톰 릭스는 파리에 온 미국인 작가입니다. 원작과는 달리 이미 소설을 한 권 써서 퓰리처 상 후보에도 오르고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모양이지만, 그래도 상황은 별로 안 좋습니다. 아내에게는 이혼당하고 남은 돈도 모두 도둑 맞았죠. 이제 그는 세제르라는 수상쩍은 악당이 운영하는 카페 위의 빈 방에서 살면서 그를 위해 역시 수상쩍기 그지 없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남아 도는 일이니, 그 동안 계획했던 책이라도 쓰면 좋을 텐데, 그가 쓰는 것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 뿐이죠.

그러던 톰은 옛날 파리 살롱 문화를 흉내내려는 속물들의 무리 속에서 마기트라는 여자를 만납니다. 그는 헝가리인 작가의 아내라는 이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요. 하지만 그의 주변에 수상쩍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마기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자, 그는 마기트가 그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작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일단 영화보다 소설은 훨씬 더 궁상이죠. 그 궁상이 묘사도 적나라하고요. 그래서 중반 이후에 끔찍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날 때, 독자들은 은근히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들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우울한 분위기 속에 묻혀버려요. 아기자기하고 시원한 재미는 떨어지지만, 이 이야기에는 영화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소설의 재미는 줄어들었지만 예술가와 뮤즈에 대한 고전적이고 로맨틱하고 우울한 주제가 짧고 일관적인 이야기 속에서 더 잘 살아난다고 할까요.

같은 날에 본 [새 구두를 사야해]처럼 [파리 5구의 여인]도 외국인이 본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을 할 여유가 전혀 없는 톰 릭스가 돌아다니는 곳들은 대부분 파리의 밑바닥이죠. 둘 다 파리의 일부일 뿐이고, 판타지 성향은 오히려 [파리 5구의 여인]이 더 강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파리가 파리 사람들이 보는 파리에 더 가까울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13/04/18)

★★★

기타등등
[마이 섬머 오브 러브]의 감독이 만든 영화더군요. 프랑스/영국/폴란드 합작 영화입니다. 원작의 웨이트리스 야나가 이 영화에는 아냐라는 폴란드인으로 등장하는데, 아마 폴란드 배우를 한 명 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감독: Pawel Pawlikowski, 배우: Ethan Hawke, Kristin Scott Thomas, Joanna Kulig, Samir Guesmi, Delphine Chuillot, Julie Papillon, Geoffrey Carey, 다른 제목: La femme du Vème

IMDb http://www.imdb.com/title/tt160577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7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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