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배트맨 무비]는 2014년에 나왔던 [레고 무비]의 스핀 오프입니다. 그 영화에서 윌 아넷이 목소리 연기를 했던 배트맨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죠. 여전히 [레고 무비] 세계관의 '마스터 빌더' 개념 같은 것이 쓰이긴 하지만 [레고 무비]와 내용 연결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영화죠. 스타일면에서도 파도 하나하나를 레고로 표현했던 전작과 같은 엄청난 집착은 없습니다.

대신 영화는 [배트맨] 패러디에 집중합니다. 코믹북 원작도 다루어지지만 영화가 다루는 건 애덤 웨스트 버전부터 크리스찬 베일 버전에 이르는 영상 각색물들이죠. 수많은 레퍼런스들이 나오기 때문에 사전지식이 조금 있으면 좋습니다. 근데 아주 몰라도 농담 따라가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관객층은 어린이들로, 사전지식 없이도 대충은 이해할 수 있도록 농담이 짜여져 있습니다.

조커가 고담시를 파괴하고 배트맨이 이를 막는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나옵니다. 하지만 영화는 액션 자체보다는 캐릭터 풍자와 관계 묘사에 집중하고 있죠. 영화 속 브루스 웨인/배트맨은 정신연령이 어린아이 수준에 고정된 유치한 마초이고 어른스러운 인간관계를 거부합니다. 이런 그의 세계에, 얼떨결에 입양한 고아 소년 딕 그레이슨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국장이 된 바바라 고든이 들어옵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엄청나게 바보스러운 실수를 저지르면서 성장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른스러운 관계를 쌓기 시작하는 거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은 조커도 포함됩니다.

솔직히 [배트맨] 각색물은 지나치게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레고 배트맨 무비]는 이런 각색물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먹히는 농담입니다. 마지막 [배트맨] 영화들이 모두 노골적으로 심각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잘 먹히죠. 배트맨의 인간적인 성장은 당연히 농담이지만 진지하게 봐도 별 빠지는 구석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러 모로 괜찮은 농담이라 하겠습니다. 조커를 포함한 주변 캐릭터들도 여기에 맞추어 잘 잡았고요. 특히 조커는 제러드 레토의 조커보다 몇 배 낫습니다.

원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패러디의 가벼움은 여전하고 후반에 이르면 반복되는 농담들이 조금 피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적시에 나온 괜찮은 코미디예요. 이 즐거움이 반복 감상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17/02/20)

★★★

기타등등
빌리 디 윌리엄스가 투페이스 목소리를 연기했죠. 그는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하비 덴트를 연기했습니다. 몇십년 뒤에야 레고의 형태로 캐릭터가 완성된 거죠.


감독: Chris McKay, 배우: Will Arnett, Michael Cera, Rosario Dawson, Ralph Fiennes, Zach Galifianakis, Jenny Slate, Jason Mantzoukas, Conan O'Brien, Doug Benson, Billy Dee Williams, Zoe Kravitz

IMDb http://www.imdb.com/title/tt411628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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