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미는 실존인물입니다. 영국의 DIY 전문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번개맞고 미쳐서 가족들과 함께 다트무어에 있는 버려진 동물원을 하나 사서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모험담을 소재로 책을 썼고 이들의 이야기는 BBC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할리우드에서 이 이야기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판타지인데, 실화잖아요. 보통 사람들이라면 꿈만 간신히 꿀 이야기를 현실세계에서 이룬 사람들이 진짜로 있습니다. 이런 걸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는 장르의 의무가 아니라면 뭐가 의무일까요. 


카메론 크로우가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서 그리는 것은 정확한 실화가 아닙니다. 실화에서 영향을 받은 허구의 이야기지요. 영화의 주인공 이름은 여전히 벤자민 미지만, 그는 실제 벤자민 미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미국인이고 그가 구입한 동물원도 미국에 있지요. 그의 가족들은 이름도 다르고 아마 성격이나 갈등의 내용도 다를 것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아내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실제 벤자민 미의 아내 캐서린은 동물원을 구입하고 재개장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죽었지요. 하지만 영화 속 벤자민 미가 동물원을 구입했을 때 그는 이미 홀아비입니다.


크로우가 벤자민 미의 이야기에서 동물원 구입 + 재개장의 모험만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상실감입니다. 모두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아내와 엄마를 잃은 사람들이 그 상실감을 극복하는 과정이지요. 동물원 모험을 시작하게 하는 동기 역시 그 상실감에서 시작되니,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라는 발랄한 제목과는 달리 상당히 애잔한 영화입니다.


드라마가 강한 영화는 아닙니다. 제목이 스토리 전부를 말해주는 내용이니, 여기서 예측불가능한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곤란하지요. 미 가족이 겪는 일들은 여전히 힘겹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별다른 장애물 없이 해피엔딩을 향해 천천히 상승합니다. 악역 비슷하게 나오는 검사관 역시 그렇게 멜로드라마틱한 괴물은 아닙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단조로운 드라마는 영화의 내용과 주제를 고려해보면 오히려 장점입니다. 영화는 이 휴식과도 같은 나른함 속에서 주인공들이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고 죽은 가족에 대한 기억과 사랑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상처를 치유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돕습니다.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행복해지는 영화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카메론 크로우의 최고 걸작은 아닙니다. 그러기엔 소재의 무게감이 너무 강하죠. 하지만 우아하고 정확한 대사들로 구성된 크로우의 각본은 여전히 따뜻한 매력을 갖고 있고 배우들과 연기는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불만을 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12/01/12) (12/01/12)


★★★


기타등등

실제 벤자민 미와 그의 가족들이 카메오 출연합니다. 동물원이 개장되었을 때 맨 처음 손님으로 오는 가족입니다.

 

감독: Cameron Crowe, 출연: Matt Damon, Scarlett Johansson, Thomas Haden Church, Colin Ford, Maggie Elizabeth Jones, Angus Macfadyen, Elle Fanning, Patrick Fugit, John Michael Higgins


IMDb http://www.imdb.com/title/tt138913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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