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베르 보니쇠르 드 라 바트, 일명 OSS 117은 프랑스의 펄프 작가 장 브루스의 창조물입니다. 암호명만 봐도 알 수 있듯, OSS 소속 미국 첩보원이죠. OSS는 전후에 없어졌으니 그는 그 뒤에 어쩔 수 없이 CIA와 NSC로 직장을 옮기게 됩니다만, 여전히 이 코드명을 쓰고 있습니다. 미국인이면서 프랑스 이름을 달고 있는 건 프랑스 혈통의 루이지애나인이기 때문이고요. 브루스는 88편의 OSS 117 소설을 썼고, 작가의 사후에 아내가 143편을, 아내가 은퇴한 뒤로는 딸과 사위가 23편을 썼다고 합니다. 이 소설들을 원작으로 몇 편의 영화가 5,60년대에 나와 제법 잘 팔린 모양이고요.

007의 아류가 아니냐고요. 첫 번째 OSS 117 소설이 나온 게 1949년입니다. 이언 플레밍의 007이 나오기 한참 전이죠. 그 때문에 이언 플레밍이 OSS 117 소설에서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얻었을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시리즈의 전개나 영화가 007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세상 일들이 대부분 그렇듯, 여기서도 족보가 그렇게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OSS 117의 이름이 최근에 다시 떠오른 건 순전히 미셸 아자나비슈스가 장 뒤자르댕 주연으로 두 편의 OSS 117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OSS 117 : 카이로 - 스파이의 둥지]와 [OSS 117: 리오 대작전]요. 최근 007 영화들과는 달리 아자나비슈스의 OSS 117 영화들은 오리지널 시리즈의 패러디입니다. 007 제임스 본드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만든 [오스틴 파워스] 영화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스타일은 [오스틴 파워스]보다 [총알 탄 사나이]에 더 가깝습니다만.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인 [OSS 117: 리오 대작전]에서 OSS 117은 SDECE에서 일하는 프랑스 첩보원입니다. OSS도 조직 이름이 아니라 그냥 알파벳인 거죠. 때는 1967년, OSS 117은 브라질에 은거하는 고위 나치 장교 폰 짐멜로부터 프랑스 전쟁 부역자의 리스트를 사들이라는 명령을 받고 리오에 파견됩니다. 거기서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복면 쓴 악당들의 습격을 받고, 폰 짐멜을 이스라엘 법정에 세우려는 모사드 요원들과 협력하게 됩니다.

영화는 5,60년대 유럽 스파이 영화나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충실한 복사입니다. 당시의 아날로그적인 감수성과 테크놀로지, 액션 스타일이 아주 충실하게 재현되고 있지요. 컴퓨터 그래픽을 썼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특수효과의 결과물만 보면 딱 당시의 저예산 액션물을 그대로 복제한 것 같습니다. 단지 영화는 여기서 아주 조금 과하게 나가요. 그대로 복제가 아니라 과장된 패러디라는 걸 관객이 인식할 정도로. 화면분할 테크닉 같은 처음에는 60년대식 쿨함이 보여질 정도로 적절하게 쓰이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폭탄처럼 사방에서 마구 터지기 시작해요.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OSS 117은 어떤 인물인가? 외모만 보면 장 뒤자르댕은 아직 머리가 벗겨지기 전의 숀 코너리와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하는 행동은 코너리보다 무성영화시대의 느끼한 남자주인공이나 악당과 비슷해요. 결정적으로 그는 바보입니다. 그는 진지하게 유태인과 나치가 화해할 수 있고, 유엔이 이스라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치들을 위한 나라를 세워줄 것이라 믿는 거 같습니다. 이 친구 말하는 거 들어보면 전혀 농담 같지 않아요!

이 영화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농담은 OSS 117의 사고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떨어진 사고방식은 그냥 낡은 게 아니라 위험하고 추합니다. 그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성차별주의자이며 아마 호모포비아이기도 할 것입니다. 영화 내내 그는 유태인, 중국인, 히피, 여자들에 대해 편견에 찬 말들을 너무나도 악의없이 지껄이는데, 보다 보면 웃어야 하는 건지,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마음을 정할 수 없습니다. 아마 그의 나쁜 머리를 그냥 동정해야 하는 거겠죠. 하지만 이 영화가 무대인 20세기 중반이 이런 서구인 남자들이 살기 참 좋았던 때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 동정심도 사라져 버립니다.

영화 대부분이 본드 영화의 전통을 통해 진행된다면, 후반부는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지배됩니다. [현기증], [사보타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같은 영화들이 진지하게 오마주되지요.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007을 흉내낼 때보다 히치콕을 흉내낼 때 더 신나하는 거 같아요. 히치콕이 더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반어법 코미디가 가진 아이러니의 무게를 덜 수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닐지. (12/01/28) 

★★★

기타등등
미셸 아자니비슈스와 장 뒤자르댕이 이 영화를 끝내고 만든 작품이 이번에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후보에 오른 [아티스트]입니다.  


감독: Michel Hazanavicius, 출연: Jean Dujardin, Louise Monot, Rüdiger Vogler, Alex Lutz, Reem Kherici, Pierre Bellemare, Ken Samuels, Serge Hazanavicius, Laurent Capelluto, 다른 제목: OSS 117: Lost in Rio


IMDb http://www.imdb.com/title/tt116766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3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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