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The Iron Lady (2011)

2012.02.18 19:15

DJUNA 조회 수:9591


[철의 여인]은 치매로 정신이 혼란스러운 노인네의 일상으로 시작합니다. 오래 전에 암으로 죽은 남편의 유령이 시치미 뚝 떼고 돌아다니고, 과거와 현재의 경계는 붕괴되어 갑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 노망난 할머니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걱정이 태산 같고요. 그리고 그 할머니는 바로 마가렛 대처입니다.

이게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치매 이야기는 2008년에 나온 딸 캐롤 대처의 회고록에서 처음 언급된 모양인데, 그럴 나이가 되긴 했죠. 하지만 영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대처의 내면 묘사는 허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쓸만한 문학적 허구죠. 치매환자의 뇌는 두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을 요약정리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영화는 그 도구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걸 모르겠단 말입니다. 적어도 영화의 초반부는 성차별적인 정치판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정치가가 된 젊은 여성의 성공기처럼 보입니다. 전 여기까지는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모르겠어요. 영화는 포클랜드 전쟁, 복지 정책, 냉전 종식과 같은 대처 시절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루긴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의견이 전혀 없어요. 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인물을 그리면서 멍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지요. 당혹스러워요.

현재 파트는 마땅히 이렇게 조각조각 떨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봉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게 안 됩니다. 대처의 과거를 정리하고 비판하고 의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측이 존재하지 않아요. 차라리 그냥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죽은 남편과의 관계를 회상하는 이야기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수상이 된 뒤로 남편의 역할이 거의 없으니 그렇게 보려고 해도 균형이 맞지 않지요. 결국 이렇게 봐도 이야기가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메릴 스트립의 연기입니다. 언제나처럼 훌륭하고 놀랍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내용이 약하면 연기는 영화의 내용에 봉사하는 대신, 구경거리인 연기 자체만 남게 되지요. 그렇게 봐도 인상적인 연기지만, 그래도 내용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12/02/18) 

★★☆

기타등등
예상했던대로, 대처 가족들은 이 영화를 안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좌파 판타지'라고 비난했다는 부분에서는 어리둥절해집니다. 이 영화에 정치적 입장이 있었단 말입니까.

감독: Phyllida Lloyd, 출연: Meryl Streep, Jim Broadbent, Iain Glen, Alexandra Roach, Olivia Colman, Harry Lloyd, Amanda Root, Nicholas Farrell, John Sessions, Anthony Head, Richard E. Grant 

IMDb http://www.imdb.com/title/tt100702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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