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열아홉 (2011)

2012.02.24 01:30

DJUNA 조회 수:12193


근친교배는 유전적인 문제점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에는 이를 막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어미는 수컷 새끼들이 다 자라나면 쫓아내죠. 남매간의 근친교배를 막는 방법도 있는데, 웨스터마크 효과라는 것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르면 어린 시절 같이 자란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고 근친상간에 대한 거부감도 강하다고 하죠. 고로 남매가 아무리 예쁘고 섹시하다고 해도 서로에게 성적감정을 느끼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나오는 종석과 수정처럼 치고 받는 게 정상적이죠.

그런데도 근친 로맨스는 거의 장르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웨스터마크 효과라는 게 그렇게 엄밀하지는 않겠죠. 같이 자란 남매간의 근친상간은 일어나긴 하니까요. 남매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자란 아이들이 연애하는 일도 드물지 않고. 하지만 그래도 왜 이런 이야기에 고정독자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요. 금지된 사랑이라 짜릿하기 때문에? 배우나 캐릭터의 미모가 일단 따라주면 상관 없기 때문에? 저도 모릅니다. 혹시 웨스터마크 효과를 느낄 수 없는 외동아이들이 늘어난 것도 변수로 작용하려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제가 여기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하여간 [열여덟, 열아홉]은 남매간의 연애감정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 호야와 서야인데, 관객들은 영화 초반부터 서야가 '오빠'인 호야에게 남매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서야는 이걸 감출 생각도 없고 웨스터마크 효과 따위는 전혀 먹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호야 쪽은 어떤가? 이 친구는 서야만큼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겁이 나고 그렇죠.

막장이라면 막장이죠. 하지만 그게 이야기가 나쁘다는 말은 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걸작들이 막장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은 막장극이 아닌가요. [리어 왕]도 막장극이잖아요. 문제는 이 막장 상황을 어떻게 그리느냐인데, [열여덟, 열아홉]은 여기서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소재를 진지하게 다루는 대신 시작부터 장르화시켜버린 거죠.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스토리는 몽땅 장르의 반복입니다. 자기 오빠를 사랑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인데, 서야는 어떤 주저도 없습니다. 왜냐고요? 이건 근친 로맨스니까요. 주변 사람들, 예를 들어 나중에 나오는 권투 코치 같은 사람들은 호야가 여동생의 근친상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거부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그 사람은 근친 로맨스의 조역이니까요. 이런 식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나오는 영화의 내용과 테마를 지나칠 정도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요. 당연히 캐릭터와 스토리의 주체성은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영화의 주인공들은 별 재미가 없습니다. 서야는 이미 시작부터 끝까지 고정된 인물이고 호야의 갈등 역시 규격화되어 있지요. 호야는 자신과 서야를 괴롭히는 학교 깡패들에 맞서기 위해 권투를 배우게 되는데, 스토리가 상당히 진행되는 단계까지 가도 분명한 의지나 동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스토리는 캐릭터나 캐스팅과도 잘 맞지 않는 거 같아요. 호야는 학교 깡패에게 얻어맞는 아이이면서 여자애들이 졸졸 따라다니는 인기남이고 시작부터 척 봐도 운동한 티가 나는 몸짱입니다. 이러니 너무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이런 식으로 모든 걸 다 가져와서는 안 됩니다. 캐릭터와 스토리를 위해 버릴 건 버려야죠.

전 [반두비] 때부터 백진희를 응원해왔지만, 이 영화의 서야에서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건 호야 역의 유연석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이런 장르 공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조연들이 좋죠. 이 영화에서 가장 시선을 끌고 관객 반응도 좋은 캐릭터는 이영진이 연기하는 호야의 권투코치 기주입니다. 가장 매력적이고 살아있어 보여요. 엄현경이 연기한 호야의 여자친구 도미는 남성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이해심이 넓지만 그래도 귀엽긴 합니다. (12/02/24)

★★

기타등등
원래 [호야]라는 제목으로 나온 2010년 영화였죠. 한 동안 개봉일자를 잡지 못했는데, 백진희가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지명도가 높아지자 개봉하는 것 같습니다.

감독: 배광수, 출연: 유연석, 백진희, 김정헌, 엄현경, 이영진, 다른 제목: Eighteen and Nineteen, 호야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Eighteen_and_Nineteen.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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