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소니 퍼킨스의 아들인 오스굿(오즈) 퍼킨스는 지금까지 주로 배우로 활동하다가 작년부터 호러 영화를 연달아 두 편 감독했습니다. 토론토에서 호평을 받은 첫 영화 [February]는 지금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요, 그 뒤에 연달아 찍은 [I Am the Pretty Thing That Lives in the House]가 얼마 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발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제목은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 이 정도면 잘 지은 제목이긴 한데, 원제의 셜리 잭슨스러운 괴상함은 따라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는 셜리 잭슨의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일단 영화의 무대가 5,60년대가 전성기였던 여성 호러 작가의 집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릴리라는 간호사입니다. 릴리는 아이리스 블럼이라는 나이 든 호러 작가에게 고용되었어요. 고용주가 죽을 때까지 집에서 같이 살면서 돌보는 게 일이죠. 그런데 아무래도 그 집에는 릴리와 아이리스 블럼 말고 어떤 존재가 더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존재는 블럼 여사의 대표작인 [벽 속의 여인]의 주인공인 폴리와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고요. 이 정도면 궁금하니까 그 책을 읽어서 내용을 확인하면 되는데, 겁이 많은 릴리는 그것도 못합니다.

스토리가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 반전이 있는 영화도 아니고요. 오프닝의 내레이션에서 릴리는 도입부에서 자신이 28살이며 결코 29살이 되지 못한다고 못박아요. 결말이 정해진 영화죠. 유령의 성격 역시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내레이션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영화는 결코 정확한 진상 같은 걸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굉장히 노골적일 수도 있는 단서들, 그러니까 곰팡이가 자라는 벽지, [벽 속의 여인]의 인용구 같은 걸 친절하게 보여주면서도 끝까지 그것들을 연결시키지 않죠.

영화가 중요시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입니다. 구체적인 묘사없이 거의 순수하게 분위기로만 이루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재료는 암시와 속삭임이고요. 영화는 느릿느릿하고 신중하게 이 분위기를 쌓아올립니다. 내레이션, 촬영과 사운드, 음향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릴리를 연기한 루스 윌슨의 역할이 커요. 80퍼센트 정도 속도를 떨어뜨리고 속삭이는 듯한 이 배우의 연기는 자칫 애들 놀리는 것처럼 공허해질 수 있는 이 이야기에 상당한 수준의 개연성을 부여합니다. (16/10/31)

★★★

기타등등
1. 안소니 퍼킨스가 나오는 [우정어린 설복]의 한 장면이 나와요.

2. 시대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아무래도 80년대 후반이거나 90년대 초반인 것 같습니다. 아직 VHS 테이프가 현역이었던 아날로그 시대의 끝물요.


감독: Oz Perkins, 배우: Ruth Wilson, Paula Prentiss, Lucy Boynton, Bob Balaban, Brad Milne, Erin Boyes

IMDb http://www.imdb.com/title/tt505940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9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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