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아워 Happy Hour (2015)

2021.12.14 14:21

DJUNA 조회 수:2521


하마구치 류스케의 2015년작 [해피아워]가 얼마 전에 개봉되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와 여러 상영회를 통해 소개되었지만 정식수입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지요. 아무래도 러닝타임 때문입니다. 상영시간이 5시간 17분이나 돼요. 이전 영화제와 상영회에서는 인터미션 없이 상영되었지만 이번에는 중간에 10분의 휴식시간이 있습니다. 이러는 게 맞지요. 집중력의 문제도 있지만 일단 관객들의 방광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영화보기는 차력쇼가 아니지 않습니까.

영화의 주인공은 고베에 사는 네 명의 30대 여성입니다. 그 중 둘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나머지 두 명은 서른 살 무렵부터 친구가 됐어요. 세 명은 기혼자이고, 간호사로 일하는 한 명은 얼마 전에 이혼했어요. 기혼자 중 한 명은 이혼재판 중이고요. 영화는 몇 달에 걸쳐 이들과 이들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갑니다.

문제는 그 일상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죠? 영화는 초반부터 걱정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시퀀스를 하나 던집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이 기획한, 물건을 균형 잡아 세우는 게 전문가인 예술가의 워크숍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건 무지 아트하우스 영화스러운 선택으로, 대부분 극장용 영화들은 이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자체가 재미있는 워크숍의 다큐멘터리와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영화 후반에는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작가 낭독회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룹니다. 신인 작가가 온천을 소재로 한 자기 소설을 무지 단조로운 목소리로 읽는데, 정말 왜 편집을 안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게 잡아요. 그러는 동안에도 온갖 일들이 일어나고 이 생뚱맞은 고집이 신기해서 전 이 파트도 잘 봤는데, 검색해 보니 여기서 지쳐버린 관객들도 꽤 있더라고요.

영화 내내 이러나? 그렇지는 않아요. 이 영화는 그냥 반복되는 일상을 담은 단조로운 영화가 아닙니다. 진행되는 동안 상당히 드라마틱한 일들이 일어나요. 이혼재판 중인 쥰은 중간에 사라지고요. 위의 워크샵과 낭송회를 기획한 후미는 남편과 신인작가의 관계를 의심하고요. 전업주부인 사쿠라코의 중학생 아들은 여자친구를 임신시키고요. 간호사인 아카리는 위에서 워크샵을 한 균형 잡기 장인과 연애를 시작하려는 거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아서, 이들을 갖고 끝이 없는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만큼 광대한 우주를 담고 있는 작품이에요. 그렇다면 시리즈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국 드라마 시리즈 1시즌 정도의 길이이고 두 차례 중간휴식을 넣어 상영한 프랑스에서는 극장용 시리즈로 소개되었다지요. 하지만 그래도 영화관에서 그냥 보는 것의 효과가 가장 큰 작품입니다.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으니 같은 주인공들이 나오는 두 편의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도 별로 없죠.

영화의 상당부분은 대화입니다. 어떤 것들은 대담이나 재판처럼 공식적인 틀 안에서 진행돼요. 워크숍과 낭독회 이후엔 긴 뒷풀이 술자리 대화가 이어지고요. 여행 온 친구들, 버스에서 처음 만난 사람의 잡담도 있고 부부간의 긴 대화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각자의 재미와 매력이 있습니다. 감정을 절제하고 최대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푸는 장면이 많아서 한국 관객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일본스럽다고 느껴지도 하는데, 그게 가장 극단적인 부분이 얼떨결에 낭독회 이후 대담을 하게 된 쥰의 남편이 뒷풀이에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설명하는 장면이 되겠습니다. 이 대사는 정확하고 논리적이고 정직하고 심지어 열정적이기 때문에 화자가 더 오싹해지지요. 그 전까지만해도 긴가민가했던 관객들도 여기서부터 쥰을 이해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비전문배우들입니다. 모두 고베 지역에서 즉흥 연기 워크샵을 통해 뽑았다고 해요. 주연배우 네 명이 로카르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니 정말로 성공적인 워크샵이었던 것이죠. 영화 대사의 담담한 어투와 스토리 전개는 비전문배우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려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들에게 최선의 연기와 캐릭터를 주는 과정이 이 영화의 흐름과 틀을 만든 게 아니었을까요. 그게 영화를 통해 현실을 발견하는 또다른 방법이었을지도 모르죠. (21/12/14)

★★★☆

기타등등
네 주연배우 중 한 명인 카와무라 리라는 올해 신작이 있습니다. [해피아워]의 공동각본가이고 프로듀서였던 노하라 타다시의 [써드 타임 럭키]라는 작품이에요.


감독: Ryûsuke Hamaguchi, 배우: Sachie Tanaka, Hazuki Kikuchi, Maiko Mihara, Rira Kawamura, Hiromi Demura, Shoko Fukunaga, Yuichiro Ito, Tsugumi Kugai, Hiroyuki Miura, Hajime Sakasho, Shuhei Shibata, Ayaka Shibutani

IMDb https://www.imdb.com/title/tt478066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4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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