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2011)

2011.07.15 08:05

DJUNA 조회 수:12075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작은 황선미의 동명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자신을 잎싹이라고 부르는 양계장의 난용종 암탉은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소망을 품고 양계장 밖의 세상으로 나가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청둥오리의 알을 품고 엄마가 됩니다.


이런 이야기는 익숙하죠. 전 책을 읽으면서 [루니 튠즈] 시리즈의 미스 프리시가 자꾸 생각나더군요.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책은 우리가 말하는 동물들이 나오는 동화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하드보일드해요. 동물들에게 닥치는 죽음과 먹이사슬의 운명을 편법으로 무시하거나 건너뛰는 작품이 아닙니다.


이를 충실하게 각색한다면 영화는 걸작이 될 겁니다. 여기서 '충실하게'란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게 아니라 원작의 분위기와 정서를 그대로 옮긴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건 위험한 모험이 되겠죠. 애니메이션 제작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관객층 역시 만족시켜야 하니까요. 같은 나이라도 책을 읽는 독자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기대는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비록 그 책이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서 그 나이 또래 애들은 거의가 다 아는 내용이라고 해도요.


영화는 원작보다 훨씬 밝은 편입니다. 잎싹의 캐릭터도 소위 '귀여운 4차원'으로 바뀌었어요. 꼬리에 꽃을 꽂고 다니고 주변 모든 동물들에게 과도하게 살갑게 굴죠. 이전과는 달리 친구들도 있습니다. 양계장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참새 짹과 탈출한 뒤 사귄 공인중개사 수달인 달수. 원작과는 달리 이 영화에는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동물들의 공동체가 존재합니다. 어쩐지 삽입할 것 같았던 액션 장면도 있습니다. 청둥오리 아들 초록이 참가한 무리의 파수꾼을 뽑는 비행 대회가 상당히 길게 나오죠.


내용과 스타일의 불일치가 보입니다.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를 밝게 치장해주었지만, 그렇다고 이야기 자체가 바뀐 건 아니거든요. 그 때문에 엉뚱한 부분에서 농담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원작 그대로라면 엄청나게 강렬했을 부분도 슬쩍 넘어가죠. 주인공 잎싹이 폐계로 분류되어 죽은 닭들과 버려지는 장면은 제 머릿속에서는 거의 홀로코스트 영화처럼 그려졌는데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화의 결말도 느낌이 다릅니다. 원작에서 결말은 논리적이었고 상승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같은 내용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생뚱맞은 사고처럼 보이거든요. 그것도 어울리지 않는 감상주의로 치장한.


영화가 모성을 다루는 방식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원작에서 알을 품고 병아리를 낳겠다는 잎싹의 욕망은 자기실현과 연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초록(원작에서는 이름이 초록머리죠)의 비중이 커진 영화판에서 잎싹은 한국영화나 연속극에 자주 보이는 '아들에게 모든 걸 주는 엄마'에 더 가깝습니다. 마찬가지로 전 족제비 은신처 대결 장면도 초록이 개입되어 오히려 드라마의 힘을 잃었다고 생각해요.


애니메이션의 질은 기대보다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들쑥날쑥해요.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캐릭터도 분명한데, 종종 프레임 안에 동작이 갇힌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전 지나치게 비장한 표정을 짓는 몇몇 '싸나이' 캐릭터들이 걸리더군요. 특히 초록의 아빠 나그네는 터프 가이 헤어스타일부터 웃겨서 도저히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어색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나쁜 영화는 아니에요. 위에 주절주절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단점보다는 성공하고 얻은 것이 더 많아요. 각색 과정 중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원작의 강한 스토리와 주제의식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요. 가끔 덜컹거리고 휘청거리지만, 여전히 가치있는 도전입니다. (11/07/15)


★★★


기타등등

원래 초록 목소리를 연기한 유승호가 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간단히 무대인사만 하고 가더군요. 하긴 연속극 촬영 중이니 바쁘겠지요. 문소리는 임신 중이라 참석을 못했고요. 달수 목소리를 연기한 박철민은 왔었어요. 딸을 VIP 시사회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해리 포터] 보러 간다고 거절했다나요.

 

감독: 오성윤, 출연: 문소리, 유승호, 최민식, 박철민, 다른 제목: Leafie, A Hen Into The Wild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Leafie_v__A_Hen_Into_The_Wild.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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